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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Nov 18. 2024

또 한 송이


숨 쉴 틈도 오밀조밀 모여있던 꽃들의 간격이

듬성듬성해지고

즙이 흐를 것만 같던 초록 가지가 메말라

갈색으로 변하고

흙은 도무지 마르질 않아 물을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물을 더 주면 물러 죽어버릴 것 같고

주지 않으면 말라죽을 것 같아

이 식물 앞에서 매일 발을 동동 굴렀다.

 

죽는 건 싫어.


화분을 뒤집어엎었다.

흙은 축축한데 줄기는 거칠거칠했다.

어떤 부분은 썩었는지 뚝뚝 끊어졌다.

최대한 줄기의 흙을 털어내 옆에 두고

화분 속에 있던 흙을 펼쳐 말렸다.


새 흙을 섞고 누워있는 식물을 일으켜 다시 화분에

심었다.

처음 심는 것처럼.

죽는 건 싫은 마음으로.


하루가 지났다.

이틀이 지났다.

또 하루가 지났다.

셀 수 없는 날들이 지났다.


그리고 만난 꽃 한 송이.


고맙다고 했다.

살아줘서 고맙다고, 힘을 내줘서 고맙다고.


또 한 송이의 꽃이 화답하듯 피었다.

쭈그러들었던 내 마음도 펴졌다.


모든 건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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