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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Aug 29. 2022

배달 효도

코로나로 재확인하는 k유통과 k비대면의 위엄

"당장 손가락 뻔했는데 너무 잘 먹었."


또다시 두줄짜리 진단키트가 우리를 긴장시켰다. 시어머니가 코로나에 걸리셨다. 토요일 밤 자가진단키트 두 줄이 뜨는 바람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었다. 월요일 생일이시라 다음 날 만나기로 했던 식사 약속에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하셔서 알았다.


이야기 들은 시간이 밤 10시 반. 지금 가장 빨리 해야하는 게 뭘까. 지난 3월 확진됐을 당시를 떠올린다.

맞다, 밥.

나는 밥이 제일 문제였다. 약 먹어야 하니 확진된 나와 남편도 먹어야 하고, 아이들도 줘야 하는데 아픈 몸으로 밥 준비하는게 제일 짜증났다. 어머니도 밤에 확진되셨으니 먹을 것도 미처 준비하지 못하셨을 것 같았다.


흠, 지금 주문해서 내일 아침 배송되는게 있을까? K새벽배송은 말한다. 안되는 게 어딨니?

C사 앱을 뒤져보니 로X배송에 웬만한 완조리제품은 거의 다 새벽배송이 가능하다. 자정까지만 주문하면 7시 전 도착. 일단 이틀 뒤 생신이신 어머니께 미역국을 포함한 갈비탕, 시래기국 등을 배송해드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안 그래도 걱정했는데 너무 잘 먹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다음 스텝은? 아직 공식 확진 전이라 병원에 가셔야했다. 어머니는 몸이 힘드시기도 하고, 일요일에 어느 병원 검사를 지도 모르겠다고 월요일에 가신다고 하는데 갖고 계신 약이 타이레놀과 용각산 뿐이고, 일흔이 넘으신 위험군이다보니 이틀이나 병을 그냥 두는게 신경이 쓰인다.


남편이 지난 3월 비대면 진료를 위해 깔았던 앱을 뒤지니 신속항원검사, PCR검사가 가능한 병원이 모두 나온다. 몇 군데 전화를 한 끝에 바로 진료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병원을 알려드렸고, 그날 오전 공식 확진을 받고, 약을 지어오실 수 있었다.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두 줄 by 슬리피언

먹을 것과, 약이 준비되고, 오늘 아침에는 그래도 생신 당일 기분 좀 내시라고 케이크를 P사 앱으로 배달시켜드렸다.


어느 정도 한숨 돌리고 나니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싶은 한편으로 조금의 아쉬움이 있다. 새벽배송이 유명한 업체는 근로자들의 무리한 노동으로 입길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지금의 위상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치고 아파야 했을까 생각하니 너무 좋다가도 가끔 마음이 불편하다.


비대면 앱도 너무 좋지만, 이 수혜를 입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지는 게 조금 아쉽다. 얼마 전에는 아이와 L놀이공원에 갔는데 앱으로 줄서는, 그러니까 예약하는 이른바 매직패스때문에 벌어진 언쟁을 목격한 적이 있다. 60대 정도 돼 보이는 어르신들이 "저 사람들을 왜 줄 안서고 들어가냐"고 물으셨고, 직원이 대답은 잘 해드렸는데 이해를 잘 못하시는 눈치였다. 약간의 짜증섞인 대화가 오갔고, 직원은 이런 일이 한두번은 아닌지 피로함이 얼굴 가득 묻어났다. 양쪽 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저런 상황이 일어나는게 지켜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지난 2015년에 UN 회원국들은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그러니까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의제를 인준하면서 'leave no one behind'를 내세웠다고 한다. 아무도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어쩌면, 자칫하면 지금은 누군가 뒤처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세상은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아가는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역시 나이가 들면, 혹은 경제력이 떨어지면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좋지만, 다같이 앞으로 갈 수 있는 사회는 쉽지 않다. 그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때라는 것도 편리함을 누릴 때마다 기억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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