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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Aug 23. 2022

알아보지 말아주세요

조금은 가면 속에 살고 싶어요

백종원 아저씨가 자영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건넨 충고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아는 척하지 말어요. 너무 아는 척하면 손님 안 와요"

여러 번 업장을 찾아 준 손님에게 너무 대놓고 아는 척하면 손님이 안 온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또 너무 아예 모른 척하면 서운하니까 아주 살짝 정말 모르지 않는다는 표시 정도만 내라는 얘기다.

거 참 손님 마음 어렵기도 하지

그런데 이게 참 내 마음이다.

백종원 님 유튜브 캡처

집 근처 편의점 여사장님이 꽤 친절하시다. 항상 밝고 유쾌하셔서 오픈 초반에 몇 번 갔는데 요즘은 잘 못가고 있다. 왜 그런지 잘 안 가지는데 이유를 모르겠어서 나도 이유가 궁금했는데 생각해보니 나를 너무 많이 알게되셔서인 것 같다.


아유, 그 집은 애가 둘이구나. 공부는 잘해? 아, 아직 어려서 잘 모른다고?아유 애들이 튀김을 많이 먹네. 튀김이 몸에 별로 안 좋아. 아유 오늘 무슨 일 있나보다. 술을 많이 사네. 뭐 기분 나쁜 일있나봐~~


친해지고 싶어서, 선한 의도로 그러시는 건 알겠는데도 굳이 우리 신상을, 특히 기분이 그런 날 기분이 그런 이유 같은 건 참 알리고 싶지가 않다. 그러다보니 발걸음이 잘 안 가지기 시작했다. 나는 제법 E와 I 중간쯤의 인간인데도 내 선을 너무 넘어들어오시는 게 달갑지가 않다.


몇 년 전엔 아파트 단지에 들어온 옷가게에 자주 갔었다. 사장님 옷 가져오시는 센스도 좋고 가격도 착했다. 하도 들락거리다보니 어느 날은 괜스레 혼자 민망해져서 "어유 저 요즘  자주 오네요. 지름신이 내리셨나" 혼자 우물우물 하는 중에 사장님이 "마음이 허해서 그래. 마음이 허하면 뭘 자꾸 채워넣고 싶어서 물건을 사게 되잖아" 하셨다.


맞다. 그때 나는 온갖 스트레스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런데 여러 사정으로 그만두진 못하고 어디 마땅히 하소연할 데도 없어서 속을 끓이던 때였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소소한 지름으로 풀고 있던 거였고 사장님은 그걸 꿰뚫듯 알고 직격으로 찌르셨다. 아, 나 그래서 이렇게 옷을 쌓아두고도 옷 사러 다니는구나.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알아버린 사장님, 왠지 시원하긴 했지만...그 뒤로는 그 옷가게에 잘 가지 못했다.


나는 들키고 싶지 않았 것 같다.


대체 이 마음이 무엇일까. 친절히 대해주려는 사장님들을 곤란하게 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더 다가가기 두려워지는 마음. 아봤어도 살짜기 모른척해줬으면 하는 마음은 대체 왜 드는 걸까.


다만 저렇게 단골집에서 알아봐준다고 못 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만 그렇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어 어떤 동지애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미처 말로는 전하지 못했지만 날 잘 알지 못하면서도 나를 알아봐줬던 친절한 그 분들에게 글로나마 미안하면서도 솔직한 내 마음을 전해본다.


알아줘서 고마웠어요, 하지만 우린 더는 못볼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나를 들키고 싶진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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