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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Aug 13. 2022

재택근무 실패기

제가 재택 좀 해봤습니다만

재.택.근.무. 집에 머물면서 일을 한다.

코로나 창궐 이후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단어 중 하나가 아닐까.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나는 재택 근무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집에서 일하며 돈도 벌고 가정도 가꾸고 이 얼마나 이상적인 일인가. 그리고 꿈으로만 생각했던 재택근무는 현실이 됐다. 나는 한동안 재택근무자로 일했고, 지금도 아주 가끔은 일을 한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재택을 꿈꾸었지만. 픽사베이

세 번째 직장은 일주일에 하루를 제외한 완전한 재택이었고 첫 직장은 오전 재택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코로나 훨씬 이전부터 나름 빨리 재택근무를 경험한 셈이다.


나름 여러 방식으로 재택을 경험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재택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재택은 다양한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은 근무 형태다.


첫 재택 경험은 첫 직장에서였다. 신문업계의 변동으로 오전에 나와서 가판대에서 만날 수 있던 이른바 '초판'이 없어지면서, 오전 재택근무를 시행한 바 있다. 나름 근무 형태 변화로 효율을 높이면서 기자들의 피로도를 낮추자는 혁신이 좀 포함된 뭐 그런 거였다.


그런데 이 재택근무는 곧 철회됐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기자가 많다고 다시 사무실로 불려 들어간 것이다.


평기자 입장이었고 아이들 때문에 재택이 된 게 너무 좋았던 입장에서 오래가지 못하고 또 변한 근무형태에 열받았지만 이해되는 면도 있었다. 회사에서 놀던 사람이 집에서는 오죽 놀겠나. 눈앞에 있으면 눈치라도 보면서 노는데 몇몇 선배들은 정말 대놓고 놀았다. 재택 근무의 성실성은 사바사다. 사람 바이 사람이라는 얘기다.


어떤 기업들은 이런 걸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만드는 것 같은데 가끔 너무 촘촘히 체크해 근로자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의자에 앉아있는 양보다 업무의 질로 평가하면 좋을텐데 언제나 정성평가는 정량평가보다 어렵고 뒷말이 많다보니 대체로 정량평가를 많이 택하는 듯하다.


나는 재택근무가 없어질까봐 진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그게 결국 실패로 이어졌다. 내가 오전에 집에 있다보니 아이들 봐주시던 친척 어른에게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아이들이 어린이집 갈 준비를 해야하는 8시 무렵은 내가 제일 바쁜 시간과 겹쳤다. 출퇴근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여서 양치기를 하면서 아이 둘까지 챙겨야하니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왜 이러는지도 모르고 악다구니를 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결국 첫 회사를 떠났다. 나의 첫 재택 실패기다.


두 번째 재택 근무는 처음보다 조금 나았다. 알바를 하는 3년 동안 아이들이 좀 컸으니까. 나는 풀타임 근무를 하고 싶어졌지만 출퇴근은 역시 무리였다. 1차 면접을 본 회사에 재택을 할 수 있겠냐 문의했더니 다행히 들어주셨다. 지금도 참 감사한 부분이다. 계약서에 주당 발행하는 기사 개수를 넣는 방식으로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 이 회사에서는 2년 반 정도 일했다.


두 번째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여전히 별 생각없이 재택에 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오래 못갔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글을 남기는 건 혹시나 또 다시 일하고 싶어졌을 때 그때는 좀 더 체계적인 계획하에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시험기간에 책상을 치우는 것처럼 쌓여있는 설거지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픽사베이

집에 머물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재택근무자가 하는 가장 큰 착각 중 하나다. 재택이든 아니든 일하면서 아이나 집안을 돌볼 수 없다는 걸 꼭 기억해야 한다. 럴거면 회사를 가지 왜 재택을 하나. 근무 시간에는 집안일을 넣어둬라. 하나만 해도 지친다.


아는 분도 재택 근무를 했는데 아이들과 꾸 싸우게 된다며 걱정이 많았다. 집에 있어서 가족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질 거라는 것도 착각이다. 아는 남자분은 코로나 때 재택 근무로 삼식이가 됐는데 끼니마다 반찬투정을 하다가 아내의 미움을 한몸에 샀다.


아이들을 두고 직장에 있으면 애틋하고 미안한데, 눈앞에 보이면 잔소리를 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업무로 민감해져 있을 때 아이들이 얼쩡거리면 괜히 화가 아이들에게로 튀기도 한다.


이제 와 하는 미련한 소리지만 집에 있더라도 출퇴근의 경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퇴근 시간도 정하고, 아이들이 불러도 도와줄 수 없는 집중 시간 같은 것도 정하는 것이 좋다.


이 부분은 사실 직장의 협조도 필요하다. 재택을 하는 사람인 경우 집에서도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일이 생기면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 직장에서도 재택을 하게 한 것이 뭔가 배려를 한 거라고 생각하다보니, 뭘 좀 더 시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업무 시간에 설거지하고 있으면 직장에선 괜찮겠나? 아직 재택 문화가 완전히 자리잡지 않아 생기는 일인 것 같다. 재택하면서 제일 힘든 게 일해도 일한 것 같지 않고 퇴근해도 퇴근한 거란 생각이 안 든다는 점이다.


일하는 공간 분리는 것이 좋다. 아빠나 엄마가 이 공간에 들어가 있으면 없는 사람인 로 하자.

좀 웃기지만 필요한 일이 있으면 문자를 보내라던가 하는 방식으로 경계를 세워야 한다.

요즘은 집 근처 스터디카페나 작업실을 구하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린 경우 가능하다면 집에 있더라도 근무 시간에 봐줄 시터를 구할 수 있으면 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다 해보겠다고 미련떨다 아이들에게 소리깨나 질러본 경험자로서 하는 말이다. 어떤 선택이든 대가를 지불해야한다는 점을 다음엔 꼭 기억하고 싶다.


일을 오래 하고 싶다면 제발 일과 가정을 양립하지 마라. 재택하면서 시터 비용 아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다. 재택근무 실패자로서 전에서부터 우러나온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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