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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Aug 22. 2022

한 번 쯤은 설명서를 읽어보자

인터넷뉴스 사용설명서

너는 왜 설명서를 안봐?
픽사베이에서 찾은 사진인데 설명서를 볼때 내 심정이 좀 이렇다.

결혼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DIY 제품이 든 택배 박스가 도착하자 나는 일단 박스를 뜯어제끼고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편이 "넌 왜 설명서를 안 읽어?"라고 물었고, 나는 "읭? 쉬워보이는데? 이 정도는 그냥 하면 되지, 뭐 대단한 것도 없어보이는데 꼭 읽어야 하나"라고 말했고, 결과는 예상되다시피 망했다. 아이 놀이용품이었는데 어느 정도 잘 되는 듯하다가 중간 연결 제품 하나를 끼웠는데 순서를 어기고 먼저 끼운 거였다. 설계상 한번 끼운게 잘 안 빠지게 돼 있어서 고생깨나 했더랬다.


나는 설명서를 잘 읽지 않는다. 그때는 쉬워보여서..라고 했지만, 나중에 보니 나는 복잡한 제품도 설명서를 먼저 읽지 않았다.

아이들 용품만 그런게 아니더란 얘기다. 기억을 아무리 되돌려봐도 설명서를 꼼꼼히 읽은 기억이 없다.


반면 남편은 설명서부터 읽는 편이다. 사실 좀 답답할 때도 있다. 정말 쉬운 건 남편이 설명서 보는 동안 조립이 거의 끝나 있을 때도 있다.

대신 치명적인 실수가 없다. 설명서를 다 읽고 시작해도 한참 전에 시작한 나보다 먼저 끝날 때도 있다. 내가 뭐가 잘못돼 허둥지둥 하는 동안 설명을 먼저 이해한 남편은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 나가니까.


중고등 아이들을 위한 진로 강의를 종종 한다. 기자로 일한 경험, 기자가 되는 방법 등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수업이다.


그런데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에게 기자가 되는 법보다 '뉴스 잘 읽는 법'을 얘기해줘야 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사실 이 얘기를 더 길게 할 때도 많은 것 같다. 뉴스가 홍수처럼 넘치는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이지만, 뉴스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사실 어른들도 잘 안되는데 아이들이 잘 될리가.


우리와 다른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에서 뉴스를 직접 생산하는 줄 아는 경우가 많았다. 신문이나 방송뉴스를 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 반 아이들 20명이 넘는데 신문을 보는 집은 한두명 정도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아이들이 믿어도 되는 뉴스와 아닌 뉴스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다. 언론이라고 하면 싸잡아 욕하는 시대긴 하지만, 그럼에도 취재를 거쳐 데스킹과 팩트체크를 해서 이름을 달고(바이라인) 내보내는 뉴스와 사무실에 앉아 '우라까이'해서 데스킹도 없고 기자이름도 없이 내보낸 기사는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예 책임을 질 의지가 일도 없는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포털을 통해 기사를 본다. 너무 많은 뉴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설명서를 한번쯤 읽어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찾아보니 인터넷뉴스에도 설명서 같은 페이지들이 있다.

다음 뉴스 페이지 속 정정기사 등 모음 페이지@Daum
네이버 뉴스페이지 하단 뉴스서비스 안내@Naver

다음 뉴스 페이지 하단에 작게 표시된 뉴스센터처럼 포털의 뉴스가 어떤 원칙으로 운영되는지 설명된 설명서들이 있다. 물론 여기 적힌 원칙대로 늘 운영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우리가 원칙을 알고는 있어야 "왜 원칙대로 운영하지 않냐"고 지적하거나 잘못된 기사가 나왔을 때 절차를 밟아 항의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의외로 이 얘길 해주면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낸다. 새로운 사실에 대한 호기심이다. 몰라서 그냥 받아들이는 거지 가짜나 질나쁜 뉴스에 속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나. 이런 아이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수동적인 뉴스 소비로 정보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기보다 능동적으로 뉴스를 소비할 수 있도록 설명서를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속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보 중 하나는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페이지다. 뉴스에서 첫 보도의 가치는 아주 높다. 그러니까 기자들이 그렇게 단독을 따러 뛰겠지. 하지만 첫 보도가 잘못되는 경우도 제법 많고, 한쪽의 입장이 덜 반영될 때도 있다. 그럴 때 하는 게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다.


신문이나 방송에는 이게 잘 보이는데 하게 돼있다. 많은 이들이 알아야하니까. 몇 면에 어느 정도 크기로 몇 초 동안 같은 기준이 있다. 그런데 인터넷뉴스는 찾아들어가야만 보이는 단점이 있다. 갈수록 더 뉴스 바로잡기가 힘들어지는 구조가 될 것 같아 안타깝다. 뉴스를 보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줘야 쓰는 사람도 조심하지 않을까 싶다. 혹은 포털도 정정,반론뉴스를 잘 보이는데 배치하는 기준 같은게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결혼한지 15년 동안 나는 예전보다는 설명서를 잘 읽게 됐다. 설명서 안 읽고 덤비다 쓴맛을 몇번 본 탓이다. 뉴스 설명서도 그래서 읽기를 권해본다. 뉴스란 게 흘러가는 이야기이고 가십거리일 때도 많지만, 때로는 우리 삶에 혹은 가까운 사람의 삶에 중요한 이야기일 때도 있다. 가끔 설명서를 찾아 이해해두면 필요할 때 좀 더 쉽게 뉴스를 이용하거나 바로잡을 수 있다. 설명서를 앞에 둔 내 심정은 꼭 첫 사진 같지만 귀찮더라도 한번쯤 설명서를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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