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리피언 Oct 04. 2022

k맏딸, 야 너두?

나의 딸에게

"엄마, 왜 날 잡은 손엔 뭘 들고 동생은 빈손에 잡아요?"

아이가 여섯 살쯤이었나?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아무렇지 않지 않은 뜻을 담은 질문을 던졌다.


응?

엄만 날 잡은 손엔 항상 물건을 드는데요. 동생 잡은 손엔 아무것도 안 들어요.

언제나 동생들 손을 잡아주는 너.

전혀 인식하지 못했는데,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왜지? 생각해보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둘째에 비해 가볍게 손을 잡아도 절대 내 손을 놓지 않을 큰아이 잡은 손에 물건도 같이 들었나 보다. 나는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 생긴 습관에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어떻게 얘기할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천천히 있는 그대로 얘기하기로 했다. "동생이 엄마 손 놓고 튀어나갈까 봐 엄마도 모르게 그랬나 봐. xx이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진심이었다. 큰애는 궁금증이 해결돼선지 쿨하게 "기분은 안 나빠요. 근데 궁금해서 물어봤어요"라고 말해줬다.


이 일에 대한 미안함은 아이가 무심히 툭툭 반말로 나와 대화하는 지금까지도 내 맘 한편에 있다. 신경 쓰인 지 좀 된 것 같은데 나름대로 여러 번 생각하고 나한테 물었던 것 같았고,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가슴 한켠을 누가 콕콕 찌르는 느낌이었다.


K-맏딸이라고 하던가. 우리나라 장녀들이 겪는 특징을 모아 얘기하는 것이다. 특징이란 것들은 말하자면 맏딸은 살림 밑천, 엄마의 가장 좋은 친구, 뛰어난 책임감 등등. 나 역시 맏딸이었지만 나는 아이를 k맏딸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나도 이 말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다 보면 얻게 되는 착한아이 콤플렉스부터 벗어버리고 싶었다. 집이 아닌 공간에서 발현하는 착한아이 콤플렉스는 나를 편치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약점이었다. 남의 평가에 지나치게 예민한 인정욕구도 내가 맏딸이어선 싶었다.


나에게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다는 걸 안 것도, 그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많이 편안해졌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프레임 밖으로 나가는 동생을 안으로 데려오는 누나

아이에게는 아예 그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살다 보면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이 역할까지 맡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맏딸이든 막내는 똑같은 자식으로서의 역할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누나가 양보해야지, 내가 없으면 니가 엄마야, ,등등의 책임을 부여하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무의식의 영역은 좀처럼 쉽지 않다.

아이가 어릴 때 내게 남편이 "너는 1호기를 좀 작은 너처럼 대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못 알아들었다. 나처럼 대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그날부터 아이를 대하는 내 행동이 하나하나 신경 쓰였다. 어떤 걸까. 너를 나처럼 대한다는 게.


어느 순간 알게 됐다. 아, 정말 그렇구나.

아이의 외모가 워낙 나와 닮아선지, 아님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더 부족한 첫째 아이에게라선지, 나는 아이를 내 방식대로 이끌고 있었던 거 같다. 아니 아니 그 길이 아니지, 여기로 가야지. 그런데 그 길이 k-맏딸의 길. 참 살아온 경험이라는 게 무섭다는 것을 아이 키우면서 많이 느낀다.


얼마 전 학원 선생님과 통화하는데 "ㅅ이는 딱 봤는데 맏딸이더라고요. 그렇게 딱 보이는 아이들이 있어요"고 하셨다.

왠지 서운했다. 안 그러길 바랐는데. 즐거운 모습만 보이고 큰 고민은 감추는 딸내미. 불안감은 잘 감추고 긍정적인 면만 보여주는. 참 어쩜 그럴까.


40년을 그런 세상에서 살아온 내 뇌 익숙한 방식이 있었던 것 같다. 동생에게 양보하라고는 안 했지만 그렇게 하면 칭찬했고, 동생을 잘 돌볼 때 아마 아이가 보기엔 티나게 좋아했을 것이다. 순둥한 아이는 그게 그렇게 자기 자리인 줄 알고 컸겠지. 그렇게 맏딸의 역할을 몸에 익혀가겠지.


그래, 내가 아무리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대도 는 익숙한대로 너를 키우겠지. 래서 나는 끊임없이 노력하려 한다. 맞지 않는 짐을 나의 제일 큰 아가에게 지우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안 지어도 되는 짐이란 것을 알고, 그걸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면서.


K맏딸이란 게 짐처럼 이야기되는 요즘이지만, 맏딸인 아이에게 늘 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첫 육아의 서투름이 미안한 부분도 있지만, 태어나 처음 낳은 사람, 큰아이에 대한 막내와는 또다른 애틋함도 큰아이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너무 닮은 너, 페이스북도 가끔헷갈리 나의 닮은꼴 아이야, 내 조건 없는 사랑을 처음 받은 것 바로 너란다. 내 서툶이 서운하더라도 늘 이것만은 기억해주길.

K맏딸 : 한국의 장녀, 맏딸이라는 뜻.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상대적으로 다른 동기간에 비해 책임감이 상당하고, 부모 혹은 다른 동기간을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특징. 착한아이 컴플렉스 등의 성격적 특징을 띄기도 한다.
이전 10화 굴곡 없는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