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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Jul 04. 2022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공감을 외치는 시대에 나타난 비공감 변호사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고작 2회 방송만에 내 페이스북 피드를 물들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현대인의 힐링 드라마라던 '나의 해방일지'의 들썩거림이 가시고 이제 뭘 보나 싶었던 사람들이 우영우를 외치고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대체 뭘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을까?


영우는 변호사다. 우리나라에서 한두손에 꼽는다는 로펌에 이제 막 입사한 신규 변호사. 그런데 얘가 자폐 스펙트럼이란다. 그런데 서울대를 나왔고, 그런데 로스쿨 수석이다. 친구 수연(하윤경 분)의 말로는 학교 다니는 내내 별명이 '어일우'였단다. 어차피 일등은 우영우.

거꾸로 읽어도 역삼역. 신나는 우영우. 넷플릭스 캡처

극 초반 드라마는 영우가 못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회전문을 못 지나가고, 솔직함을 참을 수 없고, 고래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재료가 눈에 훤히 보이는 김초밥을 주로 먹어야 하고, 사람과의 스킨십도 거의 못한다. 로펌에서 제법 잔뼈가 굵은 정명석(강기영 분) 변호사는 "얘가 의뢰인을 어떻게 만나냐"고 로펌 대표에게 찾아가 따진다.


하지만 우리는 곧 영우가 왜 '어일우'인지 알게 된다. 영우는 수많은 못하는 것들을 뚫고 변호사로서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영우가 특히 잘하는 것은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 "고래는 포유류이기 때문에 알을 낳을 수 없습니다." 헐. 영우는 자칭 '정상', '보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넘겨버리는 것들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영우가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가 타인의 감정, 사실 자신에 감정에도 취약한 자폐 스펙트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편견'이 있다. 편견이 생기는 것은 대체로 감정 때문이다. 이성적인 설명보다는 자신의 호불호가 먼저 판단을 결정하는 게 인간인지라 우리는 영우가 내는 고래 문제에서 '무게가 얼마냐고?'라는 질문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우는 만사에 공평(?)하다. 물론 김초밥, 고래처럼 '극호'인 무언가가 있긴 하지만, 의뢰인의 사건 등 잘 모르는 것에는 아무 감정이 없기 때문에 편견 없이 접근하고, 그런 접근은 본질에 다가가게 한다. 사실 나는 그래서 영우의 감정이 작용할 수도 있는 고래나, 김초밥 같은 게 연관된 사건에도 그가 본질에 잘 접근할 수 있을지 좀 궁금하긴 하다.

 

정우성, 김향기 주연의 '증인'의 극본을 쓰기도 한 문지원 작가는 이번에도 역시 '자폐'에 대한 깊고 넓은 취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에서 자폐에 대한 그의 시선만큼 놀라운 것은 '본질'에 대한 접근이다. 영우가 자폐인 것이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장치로 보일만큼, 드라마는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는데 집중한다. 다른 법정드라마들도 어떤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대체로는 그 안에 음모가 있고, 그 음모를 찾는데 집중하는 반면, 우영우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감정이나 감정에 가려져 있는 사건의 본질을 찾으려고 한다는 점이 다르게 느껴진다.

영우는 회사에서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사람도 만난다. 넷플릭스 캡처

요즘은 '감정의 공감'을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은 시대다. 아이를 키울 때도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주라고 하고, '라떼'를 외치는 꼰대들이 욕을 먹는 것도 젊은 세대의 감정에 공감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연애하기도 힘들고,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눈치 없다고 욕먹는다.


하지만 여기엔 종종 함정이 있다. 지나치게 공감에 치중하다보면, 고래가 알을 낳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기 십상이다. 우영우는 감정의 공감에는 취약하지만, 감정을 배제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으로 법정에서 판사, 방청객, 심지어 검사까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데 탁월하다. 감정에 취약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객관적으로 진실에 제대로 다가갈 수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공감을 외치는 시대, 논리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우영우를 보면 짜릿함까지 느껴진다면, 내가 너무 냉정한걸까.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박은빈이다. 박은빈은 정말 너무 찰떡같다. 약간 큰 듯한 의상 속에서 뭔가 허우적거리는 것 같은 제스처, 그 똘망똘망한 눈망울, 진실에 다가섰을 때 보여주는 대찬 변호 능력까지 정말 찰떡같다. 드라마 내용 상, 역할 상 그는 자주 눈물을 참아야할 것 같은데 첫 에피소드였던 이웃 할머니와의 장면에서 그렁그렁한 눈의 박은빈을 보고, 아 이 드라마에서 그가 가장 힘들 것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아, 우영우 정말 너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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