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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리피언 Jul 01. 2022

노조가 아무리 싫어도

혐오 부르는 너희 정체가 뭐냐

'술판이 아니라 커피판입니다.'

지난 달 30일 오후 모 언론사는 단독을 냈다. "쿠팡 노조, 본사 점거하고 대낮부터 술판 벌였다"는 제목이었다.

예상대로 노조에 대한 강력한 혐오를 담은 댓글이 100개 이상 달렸다.

쿠팡 노조가 술판을 벌였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 네이버 캡처

다음 날 쿠팡물류센터지회는 술판이 아니라 커피를 마신 것(https://www.segye.com/newsView/20220701500286?OutUrl=naver)이라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여전히 이전의 단독 기사는 해당 언론사에 계속해서 올라와 있고, 커피마신 거라는 기사가 8시쯤 게재됐지만, 아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 노조를 혐오하는 댓글은 이 기사 게재 이후에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쿠팡이 술판을 벌였다고 쓴 것과 같은 신문에서 '월수입 600만원' 레미콘 기사들 또…"30% 안 올려주면 파업"이라는 기사를 쓴 바 있다. 이 기사에도 역시 "저 정도면 잘 버는데 또 시위하냐"는 뉘앙스의 댓글이 달렸다.


한겨레는 '한달 매출 1300만원인데…화물기사 김씨는 왜 파업을 해?'(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46170.html)라는 기사를 낸 바 있다. 이 기사를 보면 1300만원이라는 거액이 주는 실제 사정이 어떤지 조금은 더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 위 기사의 600만원보다 두 배 이상 많은 매출이 적시돼 있지만, 이 일이 31시간씩 한 달에 12건 안팎의 일을 한 대가이고, 그 중 반 이상 기름값으로, 고속도로 요금으로, 요수소 비용 등으로 수중에 남는 돈은 3분의 1 남짓 된다는 것을 보면 한 일에 비해 엄청난 돈을 번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싫다면, 노조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노조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된 데에는 세상의 흐름에 잘 대응하지 못한 그들의 잘못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시민들은, 스스로가 근로자일지라도, 과격하거나 극단적인 시위보다는 이성적인 해결을 원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노조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노조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가 중요하다면, 그들 역시 시민들의 이해를 구할만한 친절함이 좀 더 필요한 상황인 것은 맞는 것 같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어그로를 끌기 쉬운 몇 가지 버튼이 아직도 너무 잘 작동하고 있다는 부분이 아쉽다. 노조, 중국인, 페미니즘 등 몇 가지 단어에 어떤 사람들은 기사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고 혐오 댓글을 다는 등 혐오를 불러일으키기 원하는 누군가가 원하는대로 기능해준다. 읽지 않았다는 것은 댓글 내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기사 내용과 전혀 관련 없는 글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뉴스에 휘청거리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그런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댓글을 잘 살펴보면 현장 상황 등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달아놓은 댓글, 숫자의 오류를 지적하는 댓글도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


바라는 점은 기사가 보여주는 부분이 단편적인 모습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진 분들이 또다른 부류, 그러니까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에 대한 또다른 혐오를 쌓기보다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본질에 대한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것이다.


언론의 중립성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기사 작성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은 결국 자신의 입장에 치우치게 돼있다. 언론이 중립적인 것은 태생부터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는 얘기다. 나는 여전히 어떤 의도를 갖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보다는 쓰다보니 그런 기사가 된 것일거라고 믿고 싶은 순진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공평하지 못한 기사에 휘둘리거나 욕하는데서 끝내기보다 호기심을 갖는 것이 중요한 시대인 것 같다. 내 일도 바쁜 현대사회에서 호기심을 가질 시간이 없다면, 속사정을 알기 전에 '중립기어'만 박아도 우리가 덜 싸우고, 덜 미워하며 지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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