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e Dec 29. 2020

보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나는 12월의 밤

참으로 오랜만에 친구와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나는 친구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다지 깊은 편은 아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편이었고, 공통의 관심사가 없으면 연락이 쉽게 이어지지 않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이 친구와도 한 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로 다시 대화를 나누게 됐다. 


오랜만의 대화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임은 분명했다. 

내가 먼저 갑작스럽게 연락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면서, 그동안 연락하지 못해 미안했다는 말을 건네자 친구는 우리가 언제 이런 낯 간지러운 말로 이유를 설명하고 눈치를 본 적이 있었냐, 사람 사는 게 원래 다 이런 거 아니겠냐며 지금 이렇게 다시 대화를 나누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이 모습이 정말 재밌지 않냐며 어색할 수도 있는 상황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목적에 따른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우리는 갑자기 옛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10년도 더 넘었어. 우리가 2007년에 만났던가?"

"그땐 참 재미있었어"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우리 인생의 전성기 같은 시점이었나 싶다"


우리는 외국계 IT회사의 대학생 인턴으로 처음 만났다. 취업 시즌의 전쟁터 같은 인턴십이 아니라 대학생 신분으로 일도 하며 네트워킹도 쌓아갈 수 있는, 생각보다 캐주얼하고 가벼우면서 즐거운 인턴십 프로그램이었다. 


그 당시 특히 친하게 지냈던 인턴십 멤버 여섯 명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그 사람들과 꽤 오랫동안 인연을 유지했었다. 내가 힘들 때 옆을 보면 항상 그 멤버들이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연애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고, 취업 시즌엔 각자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어떤 이별로 힘들어했는지, 결혼을 앞두고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회사에서는 어떤 집단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지도 뻔히 알고 있었다.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별의 감정으로 내가 힘들어하고 있을 때에 한 친구는 울고 있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마포에서 강동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왔고, 또 다른 친구는 매일같이 연락이 와서 밥 먹자, 맥주 마시자, 영화 보러 가자며 빈자리가 익숙하지 않은 내 옆을 지켜주려 노력했다. 그때 처음으로 친구란 존재가 이런 존재인 건가 라며 이 인연들과의 관계에 대해 곱씹어본 기억이 있다. 


물론 이 관계가 20대의 그 날처럼 영원하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지금 모두 다른 곳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 여섯 명 중 한 명은 해외에 거주 중이고, 네 명은 결혼을 했다. 그중 셋은 아이들도 키우고 있다. 모두가 각자의 일을 사랑하던 사람들인데 누군가는 지금까지도 열심히 일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육아로 인해 커리어를 잠시 내려놓기도 했다. 뒤도 보지 않고 신나게 함께 했던 그 순간 그 시간의 우리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를 봐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기준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대화를 이어가던 친구와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마도 소박했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화려했던 20대의 그 순간이 꽤 아름답게 그려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3년 전쯤인가. 여섯 멤버 중 한 명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던 날이 있었다. 우리 중 제일 빨리 결혼하고 남편의 일정에 맞춰 몽골로 떠났다가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케이스였다. 한 살 많은 언니였지만 유독 나와 음악 취향도 잘 맞고 이야기를 공유하고 들어주는 방식이 비슷해서 둘이서 만났던 적이 많았던, 참 좋은 친구였다. 우리는 그때 오랜만에 둘이 만나기로 하고는 북촌 근처의 고즈넉하면서도 팬시한 매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예약했었다. 우린 만나자마자 잠시 자리에서 얼어붙어 이 만남의 시간을 감격스러워했다. 몇 년간 아이를 키우고 이제야 다시 커리어를 시작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언니는 오랜만에 찾은 친구와의 자유시간, 오랜만에 입어본 스키니 청바지에 액세서리, 그리고 20대를 함께 보낸 친구와의 추억이 깃든 핸드폰 속 사진을 지켜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곧바로 나도 따라 울었다.) 우린 그때도 얘기했다. 지금도 참 행복한데, 우리 그때가 참 좋았던 것 같다 라고. 과거에 미련을 두거나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는 자체에 행복했기 때문에 우린 서로 이유를 묻지 않고 같이 울다가 웃다가 안부를 묻고 또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물론 그때도 우린 힘든 일이 많았을게 분명했다. 남자 문제로 고민했고, 취업 문제로 고민했고, 또 결혼을 앞두고 고민했었다. 그럼에도 우린 늘 함께 맥주를 마셨고, 여행을 떠났고, 남들보다 더 많은 얘길 나누려고 노력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름다운 기억이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올해 나를 괴롭히던 다양한 고민과 어려움이 있을 때, 나는 핸드폰 사진첩의 맨 위로 올라가 그때의 사진들을 찾아본 적이 많았다. 내 고민은 쉬지 않고 이어지는 중이었지만 잠시 그때의 사진을 보면 고민이나 상처가 금방 사라지는 것만 같은, 진통제 같은 역할을 경험하고 나서 자주 추억 여행을 떠나곤 했다. 책갈피를 꽂아두고 나중에 책을 이어 볼 사람처럼 마지막 장을 가슴속 어딘가에 고이 붙여두고 잠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다시 느껴보고 싶은 순간도 있다고 느끼는 2020년의 끝자락. 이 순간마저도 나는 꽤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다. 시간이 또 지나 이 글을 본다면, 지금의 내 모습과 내 이야기들을 그리워하고 있겠지. 




작가의 이전글 승진, 고과, 그 처절함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