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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Jul 22. 2021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

감정을 표현하는 것. 그것만큼 내게 어려운 건 없었다.

사람을 상대할 때, 특히 연애할 때 상대방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러 오해를 받았던 적이 많았고, 나 스스로도 이런 문제에 있어 해결을 하거나 고쳐보려 노력했으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고 그 자체로도 매우 버거웠다.


꽤 긴 시간 동안 나의 연애 상대였던 그가 말했다.

너는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나는 고개를 강하게 흔들면서 부정했다. 오랫동안 연애했는데 아직도 나를 모르겠냐고, 내가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러서 그렇지 나는 너를 매우 좋아하고 있다고. 구질구질해 보이지만  짚고 넘어가야   같아  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핑곗거리? 정도로만 생각하려 하길래 나는    시간 동안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너를 만나겠냐,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냐고 했는데 그의 대답이  신선했다. "너는 연애 상대와의 교감을 하려 하지 않고, 연애라는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다. 물론 상대방을 좋아하긴 하겠지만 열정이 부족하다.  쓸데없이 신중하거나 냉철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고, 다른 사람들에게 쓰는 말투와 내게 쓰는 말투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에도 열정이라는  필요한데  사랑의 감정에 있어서 높낮이가 없다"


기가 막혔다. 네가 나만큼 절절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에 열정이 없다라니.

나는 그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던 날, 구글링으로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을 검색해 가까스로 번호를 알아내서 그에게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가서 봐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었고, 기념일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날 갑자기 그가 보고 싶다며 지하철로만 한 시간을 타고 가야 하는 그의 집 앞에 불쑥 찾아가 길거리 떡볶이와 어묵만 먹고 헤어진 날도 있었다.


'사랑한다'는 표현이 어색해 말로는 잘 못하면서도 생일이나 기념일이 되면 손편지의 텍스트로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었다. 가슴팍에 파고들만한 애교나 눈웃음 같은 건 없었지만 그냥 담백하게 나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상대방에게는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절절하게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표현하려면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 걸까. 아니 그 절절한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나 꼭 필요한 건가. 내가 2년 동안 그에게 보여줬던 말과 행동, 그리고 세세한 감정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표현은 물론 중요하다는 것. 동의한다. 말, 행동, 아니면 몸으로 내 마음을 표현해야 상대방도 '아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세상엔 그걸 생각보다 못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나 같은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허용되지 않는 걸까.


무엇보다 열정적인 사랑, 절절한 사랑에 대한 수치의 개념도 없다. 정의도 마땅히 없다. 행동 수칙? 차라리 이런 게 있다면 아마 곧잘 따라 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내게 연애는 피곤하고 지치는 행위일 뿐이었고, 내 자존감을 그리 낮춰가며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거라면 이제 그만둬도 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그리고 연애가 끝나던 날,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그날의 분위기에 대한 슬픈 감정이 뒤섞여 친한 친구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느꼈다. '내가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는 걸 보니 표현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어김없이 새로운 연애는 시작된다.

연애가 참 재미있는 게, 상대가 달라지면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나'라는 사람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또 바뀐다. 새롭게 등장한 연애 상대는 내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이성적으로 선 긋기를 할 줄 아는 네가 너무 좋다. 진솔한 얘기, 오래 묵혀둔 것 같은 자잘한 고민들, 그리고 어디 가서 말하기도 민망한 내용의 뒷담화 같은 것들을 내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해주는 네가 너무 좋다. 너는 나처럼 흥분하지 않고 항상 적절한 템포를 유지하며 곁에 있어줘서 너무 좋다."


감정 표현은 아직도 어렵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하는 감정 표현을 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조금 늦었지만 말이다. 그 이후부터의 연애는 꽤 순조로울 것이다. 누구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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