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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Mar 20. 2024

넘사벽의 치밀함, 미켈란젤로가 만든 '캄피톨리오 광장'

'Capital(수도, 자본)'의 어원이 된 캄피톨리오 언덕의 고대 도시

로마는 일곱 개의 언덕을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캄피톨리오 광장>은 7개의 언덕 중 가장 신성한 캄피톨리오 언덕에 세워졌습니다. 캄피톨리오는 영어의 수도를 뜻하는 캐피털('Capital')의 어원이기도 하죠.


이 광장은 시저 등의 황제들이 전승을 기원하고 개선 보고를 한 곳입니다.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가 시저의 죽음을 알린 곳이기도 한데요, 브루투스는 포로 로마노의 원로원 의사당 앞에서 시저를 살해합니다. 그리고는 깜삐돌리오 광장으로 달려와 최고집정관 시저의 죽음을 알립니다. 브루투스는 그리고 이렇게 말하며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나는 시저를 사랑했다. 그러나 로마를 더 사랑했다"

장 레옹 제롬의 <카이사르의 죽음>

고대 로마가 멸망한 뒤 포로 로마노 주변은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새롭게 치장되었는데요,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 바로크 시대까지 많은 조각과 건축물들이 로마를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교황들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고 로마를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이를 위해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으로 예술가들을 지원하기로 합니다. 교황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캄피톨리오 광장에 새 길을 내고 광장 양쪽에 궁전을 짓도록 명했습니다.


캄피톨리오 광장으로 오르는 계단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인데요, 돌계단이 있는 언덕길이라는 뜻의 ‘코르도나타’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공사 초기에 사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도 그의 설계대로 공사가 계속 진행되어 1세기 후인 17세기에 완성되었습니다. 코르도나타를 통해 올라가면 캄피톨리오 광장이 나타나는데요, 역시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대리석 바닥이 아름답습니다. 이 기하학적 문양은 로마시청이 있는 캄피톨리오 광장을 대표하는 문양입니다. 여행하시다가도 로마시의 주차증, 티켓 등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광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아래쪽으로 갈수록 넓게 설계하였는데요, 위에서 계단을 내려다보면 착시현상으로 그 넓이가 일정하게 보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코르도나타’ 계단과 광장의 문양

광장의 중앙에는 기마상이 있습니다. 180년경의 작품으로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입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 많은 황제의 청동상과 기마상이 만들어졌는데요, 하지만 기독교국가가 되면서 이교도의 동상이라는 이유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기마상은 지금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단 하나뿐인데요, 이 기마상만이 살아남은 이유는 흥미롭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에 기마상의 인물이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황제 콘스탄티누스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아우렐리우스였죠. 그래서 겨우 남게 된 이 하나뿐인 고대 로마의 기마상은 그래서 중세 이후 유럽의 모든 기마상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기마상의 세부묘사 조각을 보면 로마 조각가들의 청동 주조기술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있던 말고삐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또 오른발 말굽 아래에도 패전한 왕이 자그마한 입상으로 놓여있었다는데, 이 역시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광장 중앙에 세워진 '아우렐리우스의 청동 기마상'

이 광장은 3개 건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정면의 <세나토리오궁>은 12세기 지어진 건물로, 현재 시청사 건물입니다. 이곳에서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결혼식을 많이 올린다고 합니다. 성당에서 하는 결혼식에 비해 거창한 결혼식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시청에서 간단한 결혼식을 치르고 혼인서약을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캄피돌리오 광장에서는 멋지게 차려입은 신랑, 신부의 기념사진 촬영을 자주 볼 수 있답니다.    

중앙의 '세나토리오궁'은 현재 시청사로, 좌우의 '콘세르바토리 궁'과 '누오보 궁'은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광장의 오른쪽은 <콘세르바토리 궁>, 왼쪽은 <누오보 궁>으로 두 궁은 현재 <캄피톨리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두 건물은 지하 회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박물관 내부는 겉에서 보기보다 꽤 넓게 느껴집니다. 캄피톨리오 박물관은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조각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박물관 중 하나입니다. 그럼 대표적인 작품 몇 개를 살펴볼까요?

암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로마의 건국신화의 주인공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캄피톨리오 박물관>에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청동상이 있습니다. 로마건국 전설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살아난 쌍둥이 형제의 조각상이죠. <로마의 암늑대 청동상> 또는 <캄피톨리오의 암늑대>라고도 합니다. 이 청동상은 로마-에트루리아 예술의 초창기 조각으로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것인데요, 늑대의 젖을 먹고 있는 쌍둥이들은 15세기말에 암늑대상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저의 두상조각>도 이곳에 있습니다.  카이사르(시저)는 천재적인 전략가이며 정치가였으며, 온건한 독재자로 불립니다. 공화정 시절의 로마의 최고 권력인 집정관에 올라 많은 업적을 이뤘지만,  자신이 종신 집정관이 되어, 황제가 되고자 하다가 공화정을 지키려는 반대파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그가 남긴 많은 명언들이 2천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죠. 소아시아에서 ‘파르나케스’를 격파하고 원로원에 보낸 세 마디로 된 보고서에,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그리고 보수파에 대항하여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북부로 진격하면서- “주사위는 던져졌다”, 또 '율리우스 시저'의 심복이자 친구였던 '브루투스'의 칼에 찔려 쓰러지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 “브루투스 너마저도...”라는 말도 유명하죠. 하지만 마지막 명언으로 전해지는 '브루투스 너마저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우스 시저'의 명대사로 전해져, 실제로 시저가 죽음을 당한 당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명확지 않습니다.

(좌)'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두상 /(우) 아우렐리우의 청동두상

      

박물관의 안뜰에는 아드리안 신전에서 가져온 아름다운 부조들과 4세기의 작품인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두상조각>이 손, 발, 다리의 일부분과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두상조각은 높이가 2.6m에 달하는데요, 거대한 좌상의 일부로 실제 황제상은 10m가 넘는 크기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거대한 조각상은 '포로 로마노' 안에 있었는데 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두상과 조각들

진짜 소년이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섬세한 <가시를 빼는 소년>도 전시되어 있는데, 기원전 2세기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조각을 100년 후 로마에서 모방한 작품입니다. <죽어가는 갈리아인> 역시 유명한 그리스 조각을 모방한 작품인데요, 깊은 동정과 연민을 느끼게 하는 걸작 중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좌) '가시를 빼는 소년 / (우) '죽어가는 갈리아인'

<캄피톨리오의 비너스>는 신비스럽게 균형 잡힌 청초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아우구스투스의 흉상>은 황제의 홀에 놓여 있습니다. 박물관에 있는 많은 아름다운 고전 조각 가운데 하나입니다.  <플라비아 여인의 두상> 1세기의 대리석상으로 당시 귀족사회에서 유행한 머리 모양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철학자의 방’에는 그리스 철학자, 정치가, 과학자, 문학가들의 조각상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희귀한 붉은 대리석 조각상인 <파우누스 신의 상>도 있습니다.

(좌) '캄피톨리오의 비너스' / (중간) '플리비아 여인의 두상' / '파우누스 신의 상'

코르도나타 계단 왼쪽에는 또 다른 큰 계단이 보이는데요, <아라코엘리 계단>입니다. 124개의 대리석 계단인데요, 1348년에 만들어져 이 계단은 정치 토론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계단에는 특이한 속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무릎으로 이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복권에 당첨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국적을 불문하고 복권당첨으로 일확천금을 얻기 원하는 사람들의 희망은 다~ 같은 거 같습니다.

계단 옆으로 로마제국 시절부터 도시 서민들이 살던 아파트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로마제국 시대의 벽돌 아파트로 <로만 인슐라>라고 하는데요, 이 당시 주거의 형태로 아파트가 존재했었다니 놀랍습니다.

(좌) '아라코엘리 계단' / (중앙) 현재 남아 있는 '로만 인슐라' 유적 / (우) 로마 시민의 인슐라의 당시 모습 (출처: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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