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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Mar 14. 2024

로마의 랜드마크이자 여행의 시작점 [콜로세움] 이야기

영화 [글래디에이터] 검투사의 배경이 되었던 콜로세움, 그 놀라운 규모.

여러분은 '로마' 하면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파리 하면 에펠탑 이듯, 로마 하면 단연 콜로세움입니다.

로마의 랜드마크 [콜로세움]

이렇듯 콜로세움은 로마의 상징인데요, 이 원형 경기장은 남아 있는 고대 로마의 유적 중 가장 큰 건축물입니다. 돌과 콘크리트로 세운 타원 형태로, 긴 쪽의 지름이 188m, 짧은 쪽의 지름이 156m, 건물의 둘레는 527m나 됩니다.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의 중심지인 포로 로마노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원래 네로황제의 화려한 황금궁전과 인공연못이 있던 곳이었는데요, 연못을 메우고 지은 것입니다.


콜로세움은 8년 만에 완공되었는데, 예루살렘에서 끌고 온 4만 명의 노예를 투입시켰다고 합니다. 웅장한 건축물의 크기도 크기지만 완공식도 기념비적입니다. 80년 완공 기념식에는 대혈투가 100일 동안 계속되어, 무려 5,000마리의 맹수와 많은 검투사들이 혈투를 벌였습니다. 경기는 검투사와 맹수들의 대결, 검투사끼리의 싸움이었는데, 검투사들은 대부분 노예, 전쟁포로 또는 범죄자 신분의 남자였습니다. 여자 검투사도 몇몇 있었다고 하네요.     

영화 <글래디에이터(2000년)>의 검투사 장면

이 콜로세움은 당시 3층의 구조였고, 4층은 덧붙여진 것입니다. 콜로세움의 외벽은 아치와 기둥으로 되어 있는데,  고대 그리스의 3대 건축양식을 모두 보여주고 있습니다. 1층은 도리아 식 기둥, 2층은 이오니아 식 기둥, 3층은 코린트 식 기둥으로 만들었습니다. 4층은 복합식 기둥입니다. 가장 위층에는 나무기둥을 세우고 ‘베라리움’이라는 천막 지붕을 설치하여, 관객들을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보호하였다고 합니다.     


수용인원은 5~7만 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상암동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수용인원이 6만 8천 명이니, 비슷한 규모가 되겠죠. 수만 명의 관객도 전원 15분 안에 콜로세움에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번호가 매겨진 80개의 아치와 통로가 매우 합리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관중석은 4개 층으로 나뉘는데, 제일 아래쪽은 황제일가와 귀족계급이, 2층은 기사와 상류계급이, 3층은 일반 로마시민들이, 4층은 하류층 사람들이 앉았다고 합니다.  

베라리움이 설치된 콜로세움의 복원도 이미지 [출처: dwfcontract.com]

콜로세움의 내부로 들어가면 6m 깊이의 지하실을 볼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작은 방으로 되어 있는데요, 이곳은 맹수와 검투사를 수용하는 곳이었고, 이 위를 나무판자로 덮고 모래를 깔아 넓은 경기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지금은 널빤지 일부분이 복원되어 직경 검투장의 지하구조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2000년 개봉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는 이 콜로세움을 세트로 지어서 촬영했었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코모두스 황제’는 실제로 1,000여 회 이상 직접 검투장에 검투사로 나와 싸웠다고 합니다. 자신을 헤라클레스라고 칭하며 자신의 용맹함과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하죠.

콜로세움의 경기장과 지하공간 구조

그러나 콜로세움에서의 검투경기는 404년 호노리우스 황제 때 금지되었습니다. 523년에는 야생동물의 싸움이 금지되고, 콜로세움은 로마제국의 쇠망과 함께 점차 폐허로 변해갔습니다. 중세는 요새로 사용되다가 19세기까지 방치되어 있었는데, 이후 1749년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이곳을 복원, 보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콜로세움에 수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을 ‘사자밥’으로 던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황은 이곳을 성지로 선포하고 내부에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콜로세움이 아니라 로마의 대원형 경기장에서 벌어졌다고 합니다. 영화 ‘벤허’에 나오는 고대 전차경기장이었고, 이곳에서 약 800m 떨어져 있는 곳에서 말이죠.  

(좌)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초상화 / (우) 콜로세움의 내부에 세워진 십자가

2000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콜로세움은 풍파를 겪었는데요, 원래는 가장 바깥쪽 벽도 완전한 타원형이었으나 지진에 의해 무너지고, 르네상스 때에는 떨어진 돌을 왕궁과 다리, 심지어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는 데 사용하면서 반쪽이 사라졌습니다. 바닥을 보면 흰색 돌로 벽의 윤곽을 표시해 놓은 부분이 있죠. 이것으로 원래의 크기와 형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콜로세움이 무너질 때 로마도 무너지고 세계도 무너질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이곳은 로마의 최고 명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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