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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과점 Nov 15. 2024

오늘의 에세이 / 사건의 시작은 사랑이었다.





나는 솟아오르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그에게 과감히 쏟아냈다. 처음에 그는 당황스러워했고 그다음엔 웃어주었다.그의 웃음은 나에게 퍼져 내 안으로 붉게 전염되었다.




그 사건은 타의에 의한 우연도 아니었고, 오롯이 나의 의지로 만들어 낸 어차피 일어나게 될 예견된 사건 같은 것이었다. 그 사람을 마주친 그날 적어도 나의 생각은 그러했다.




그렇게 사건의 시작은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후 심한 열병을 앓듯 미친 듯이 타올랐고 또 타버렸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기어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어떠한 선율의 감정이 계속 불어났을 때, 나는 나의 삶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알아챘어야 했다. 그 사람 또한 하루하루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고스란히 불태웠다.



우리는 끝이 보이는 종착지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렇게 끝까지 달려간 곳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랑에도 장례식이 있다면 아마도 그날이 우리의 발인일쯤 되었던 것 같다. 종착지에는 허공을 가르며 춤추던 잿가루만이 나를 향해 비웃는 듯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참을 떠다니던 잿가루는 바람이 일렁이는 음악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그 자리에 다소곳이 먼지로 내려앉았다. 우리는 결국 우리 두 사람의 삶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가 갑자기 너무나 미워졌다.

그와 동시에 나 자신도 미워졌다.

모든 순간,

나의 지나친 감정이 우선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순간 나를 위해 충분히 울어줄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한동안 나는 그를 위해 울었다.

시간이 더 지난 뒤에는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었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사건은 그제야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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