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쉬어서 그런가... 강렬한 도파민을 분출시키는 그 일을 중단하면 몸은 편안한데 왠지 헛헛해진다.
게다가 5월 첫째 주에 남편이 집에 너무 오래 있었다. 월요일은 노동절이라서 금, 토, 일은 연휴라서 집에 있었다. 지금 전투적으로 갈등 중이라서(물론 나 혼자 생각이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게 현실이다ㅜㅜ.) 그리고 연휴 내내 비가 왔다. 마음은 비 맞은 신문지처럼 볼품없이 뒹굴고 있었다.
여하튼 나는 조금씩 우울과 만나고 있었다. 조금 달라진 점은 그것을 회피하지도 않았고 밀어내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 감정에 빠지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 잘 만나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을 쳐다보기 싫어하거나, '흐억'하고 놀라 도망가지도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서 놀지도 않았다. 비 맞아서 축 쳐진 빨래처럼 그냥 우두커니 서 있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괴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고통을 꽉꽉 눌러놓고 살고 싶지 않았다. 장독에 넣어 놓은 메주처럼 눌러놓는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된장처럼 맛나게 익어가는 것도 아닌 누르기는 그만하고 싶어졌다. 내가 우울하지 않아야 될 이유는 무엇인가? 뒤집어 말하면 늘 행복해야 된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건 확실하다. 날개 옷 입은 선녀도 아니고 신선도 아니잖아...
그런데 그렇게 살았다. '우울하면 안 돼' '남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안 돼' '네가 우울할 이유가 뭐야... 배가 불렀구나...' '팔자가 늘어졌구나' 이런 교도관 같은 내면의 목소리는 목구멍을 따악 움켜잡고 있었다. 어디서 왔을까? 별에서 온 것 같지는 않고 엄마에게서 왔을까? 세상 속에서 묻어 나왔을까?
우울이 지나간 것은 우연이었다.
다음 주에 딸아이와 제주도를 가기로 했는데 바다수영을 해볼까 생각했다. 걱정 많은 나는 구명조끼 없이 바다에 들어가면 죽을 것 같어서 딸아이 구명조끼를 구해야했다. 친구들에게 빌려보려 했는데 다들 정리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커서 당근에 팔았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당근을 검색했는데 가까운 동네에 물건이 나와 있었다. M과 L를 같이 만원에 팔고 있었다. 채팅을 해서 M 한 개만 사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오우케이'한다.
수요일 아침 요가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oo동으로 갔다. 네이버 길찾기는 오류가 있어서 시간을 못 맞출 뻔했다. 다행히 버스를 제대로 탔고 버스 정류장 바로 옆이 아파트였다. 젊고 고운 새댁이 구명조끼를 들고 나왔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거래를 성사했다. 오천 원에 구명조끼를 득템한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게 뭐라고...
그. 런. 데. 말이야...
기
.
분
.
이
.
란
.
게
.
그렇더라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엿가락처럼 늘어지기도 하고 작은 일에 텐션이 올라오기도 하는 걸 확연히 느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햇살을 즐기며 타박타박 걸었다. 몸이 따뜻해지는 햇살을 등에 메고 오른쪽 어깨에는 철이 아닌 구명조끼를 메고 오월을 걸었다. 한적하고 수수한 동네가 아주 편안하게 느껴졌다.
무작정 걸었는데 강이 나왔다. 작은 강줄기가 보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6년을 이 강을 건너 학교로 갔다. 그 학교는 그다지였다. 사립이었던 학교는 엄격하고 답답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성적을 빌미로 한 폭력이 자주 있었다. 그때 나는 아주 아주 외롭고 고통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