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등학교는 사립이었다. 중학교와 같은 재단이었다. 사립은 오로지 좋은 대학만을 목표로 가질 확률이 높다. 입학하자마자 특설반을 만들어 아이들을 홍해 물 가르듯이 갈랐다. 복도에서 울고 난리가 났다. 특설반에 들어간 아이들은 압박감과 공부만 잘하는 못 된 것들이라는 이름표를 얻었고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은 패배감과 소외감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선생님은 너희들은 특별하다고 추켜 세웠고 어떤 선생님들은 '너희들!! 공부 좀 잘한다고 으스대지 마라'며 힐난했다. 시골 구석의 학교에서 이런저런 말들은 내 마음을 어두운 구석으로 몰고 갔다.
1, 2학년 두 번 모두 A선생님이 담임이었다. 눈매가 날카로운 남자 선생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성격장애가 아닐까 의심된다. 공포스러웠던 사건은 두 번 있었다. 중간고사를 치면 종이 답지에 답을 적었고 반별로 까만 철끈으로 묶었다. 시험을 치고 나면 반을 바꿔서 답지를 손으로 매겼다. 2반의 1번 학생이 1반의 1번 학생 답지를 매기는 시스템이었다.
점심시간이었다. 우리 반의 답지를 확인하던 선생은 피식하며 묘한 웃음을 흘리더니 우리 반 학생에게 뒷반의 00번을 불러오라고 심부름시켰다. 영문을 모르고 뒷반에서 온 아이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선생은 다짜고짜 안경을 벗으라고 말했다. 싸한 느낌에 당황한 아이가 안경을 벗자마자 선생은 아이 뺨을 아주 세게 때렸다. 우리는 모두 악... 소리도 못 내고 얼어버렸다. 그 눈빛은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너는 맞아도 싸,,, 이런 000한 것 같으니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로는 잘못 매겨서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답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17살 소녀가 친구들 앞에서 기습적인 폭력을 겪는 일은 잔인하다. 단순한 채점 실수일 가능성이 99.9%였다.
그에게 우리는 참기름집 깨처럼 쥐어짜서 성적을 올려 자신의 위상을 올려주어야 하는 도구일 뿐이었구나 하는 생각은 한참 나이 먹고서야 할 수 있었다. 모교에 교생실습을 가서 친하게 지냈던 여자선생님에게 지난 일을 하소연하니 금시초문이라고 놀라셨다. 다른 반아이들과 선생님들 앞에서는 호인이었나 보다.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피해자로 삼은 혹은 제물로 삼은 사람과 주변인들에게는 다른 인격을 보인다는 분석이 있는데 맞나보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학급회의시간이었다. 한 아이가 그 아이는 선생에게 반대하는 말(그의 폭력적인 행동과 언어에 대해 저항했다)을 쏟아내면서 감정이 격해져서 "씨.."라는 말을 뱉었다. 선생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아이를 교단 앞으로 불렸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않고 아이를 넘어뜨리고 발로 밟았다. 그의 눈빛은 맹렬하고 잔인했다. 실컷 밟고 난 다음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얼굴을 한 번 흔들고 차분하게 회의를 이어갔다.
미친놈....
우리는 아무 말 못도 못하고 숨죽이면 살았는데 그 몇 년 뒤 그는 한 아이를 심하게 폭행했다고 한다. 그 부모님은 학교에 가서 강하게 부당함을 말했다고 한다. 폭행의 이유는 그 아이가 화장실에서 선생 흉내를 내면서 웃어서였다고 한다. 지나가다가 그 장면을 우연히 보고 바로 폭행했다고 한다.
현장에 있지 않았어도 나는 그의 눈빛에 흐르는 광기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군대에서 많이 맞았을까... 아니면 아버지에게 많이 맞았을까... 학년이 시작되기 전 친구들과 그의 집에 놀러 갈 일이 있었다. 그는 다정한 남편이었다. 사모님도 차분하신 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동물적인 눈빛은 고등시절 내내 마음을 찔러내는 칼끝같았다.
고3이 되어 그 담임을 보지 않으니 살 것 같았다. 고3 담임도 시험을 치고 나면 체벌을 했다. '00점 아래로 다 나와!'라는 상식적인 체벌을 했다. 물론 성적이 좋지 않다고 맞아야 되는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맥락도 없이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폭력에 비하면...
고등시절은 인생의 암흑기였다. 성적에 대한 압박과 공포스러운 교실 분위기는 몸과 마음에 깊은 우울을 남겼다.
이상하지...
오월의 햇살아래 오래된 oo동 골목을 걸을 때 그날의 나를 만났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아무에게도 말 못 할 이야기를 움켜쥐고 있는 나를.
나른한 햇살은 시간을 4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나는 그날의 나를 보아주었다. 오래오래 보아주었다. 그리고 보내지 못한 감정보따리를 끌러보았다. 조금씩 조금씩... 그것들은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면 끈적한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래도 보았다. 계속 보았다. 오늘의 내가 그날의 나를 보아 주었다. 다리는 풀리고 배가 고파서 의식은 몽롱해졌다. 담벼락은 울퉁불퉁하고 오월의 들장미는 오래된 대문 위에 활짝 웃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그날의 나, 오월햇살 아래의 나, 그리고 그 둘을 바라보는 나도 있었다.
우리들은 삼각형을 이루어 하나의 원안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서로를 보아주었고 얼굴을 만져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가벼워졌다. 그날의 내가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