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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Apr 05. 2024

미친 게 확실해.

 '아... 나는 왜 이럴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시작은 '나는 이런 상태이다...'가 좋다. '왜 이럴까...'라는 한탄은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전제가 틀렸으니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되돌이표 물음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그럼 혹시 제정신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정확하고 예의 바르다. '나는 왜 이럴까'는 무엄(?)하고 교만한 질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 뭔가 잘못되어서 지금 이 지경이라는 이야기인데, 이 모습이 지금 '나'이다.


달리기를 해야 될 때는 책을 읽고 싶고 책을 읽어야 되는 날에는 달리기를 하고 싶다.


'그래,,,, 확실히 미,,, 쳤네....'


그래서 나는 달리기 대회가 있을 때는 먼저 책을 읽는다. 책방에 가려고 책을 읽어야 할 때는 먼저 달리기를 해버린다. 계속 머릿속에서  '책, 책, 책, 읽고 싶다...'라던가 '달리기 하고 싶다. 펄쩍펄쩍 싶다...'라는 소리가 맴돌기 때문이다.


달리기도 책 읽기도 아주 힘들었다. 집중력이 바닥이라서 책 한 장 읽고 네이버쇼핑 속으로, 뛰어들었다. 부들부들 떨면서 장바구니에 물건을 집어넣곤 했다. 속에서 욕도 많이 올라왔다. 절대 내가 한 것은 아니다! 잠시 다른 인격이 나타나서 '이걸 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던가 '네가 언제부터 이런 일을 했다고' 는 파탄적 이야기를 주절댔다. 그 목소리의 핵심은 '다 때려치워'라던가 '이 따위로 하려면 하지 마!'라는 내용이었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버지가 쏟아낸 말들의 그림자였다.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힘든 일을 시작할 때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달리기를 하거나 책을 읽는 일은 둘 다 수익이 짭짤한 배팅이다. 달리기만 한 날도 대 성공이고 책 읽기만 한 날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자신을 더 잘해야 된다고 몰아붙이는 성향은 한계가 없는 기대를 짊어지고 살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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