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지뜰' 구례 농촌유학 이야기 2편
‘현타’ 그것은 ‘이사’의 다른 말이 아닐까?
꿈꾸던 순간이 현실이 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이사’다. 내가 꿈꾸던 순간은 지리산 뷰를 바라보며 앉아 폼나게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사를 하고 보니 일주일이 너무 빨리 흘러 가만히 앉아 있을 새가 없었다. 그제야 농촌유학이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이삿날을 3개월 전부터 정하고 12월부터 2월까지의 일정표를 만들어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거실 가운데 벽에 붙여 두었다. 나도 오며 가며 일정표를 보면서 중요한 일정을 잊지 않고, 큰 변화를 겪을 아이를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가족은 거실 소파에 모여 앉을 때면 일정표를 보면서 농촌 유학 준비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장거리 이동이나 금전적인 부분까지 남편의 원활한 도움을 받기 위해 미리 일정을 공유하는 것도 매우 중요했다. 이삿날을 양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요란하게 소문을 냈다. 이삿짐도 거실 일정표 밑에 작은 것부터 차곡차곡 모아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3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여유 있게 1차, 2차 완벽할 것만 같았던 이사는 개학 일주일이 지난 시점까지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쇼’는 끝이 없는 것처럼,
‘이사’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다.
개학 일주일 전 계획했던 1차 이사는 책상 겸 식탁으로 쓸 테이블과 이불, 세면도구, 주방 도구, 생활필수품만 챙겼는데도 승용차 뒷좌석까지 짐이 꽉 찼다. 세 식구 누울 이불이 꽤 부피를 많이 차지했다. 어쩔 수 없이 옷은 다음에 챙겨가기로 하고 일단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 챙겼다.
하지만 결국 그다음 이사에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 챙겨야 했다. 전기밥솥에 전자레인지까지 있는 풀옵션 펜션으로 이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와 아이, 두 식구의 생존에 필요한 물품이 이렇게 많은 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커다란 샴푸 대신 ‘샴푸바’, 주방세제 통 대신 ‘설거지 비누’ 최소한의 부피로 짐 챙기기를 노력한 결과, 이삿짐 정리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필요한 물건은 많다.
살던 집의 절반 정도 되는 곳에서의 삶은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틀 정도 지내니 허리와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계속 누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소파를 주문했다. 침대는 좀 더 참아 보고 두꺼운 요로 견뎌 보려고 하는데, 아이가 딱딱한 바닥이 싫다며 매일 밤 칭얼댄다.
첫 이삿짐을 정리하고 아이와 동네를 둘러보는데, 앞집 할머니를 마주쳤다. 할머니는 꾸벅 인사하는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면서 맞아주셨다.
“요 앞 펜션에 이사 왔어요”
“아이고. 잘했네. 여기 초등학교로 온 거야?”
“네, 맞아요. 농촌유학 왔어요.”
“여기는 사람이 귀해. 들어와서 TV라도 보고 가”
“그래도 돼요?”
“그럼. 어서 들어와”
당신 집에 들어와 TV라도 보고 가라는 할머니. 얼마나 우리가 반가웠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어색하지만 할머니 집에 아이와 함께 들어갔다. 할머니는 불편한 다리로 이방 저 방에서 사탕과 뻥튀기를 간식으로 내어 주셨다.
할머니 댁에는 벽과 서랍장 앞에 가족사진이 빼곡히 놓여있었다. 작년에 구순이 지난 할머니의 집에는 사진 속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차 있었다. 초등학교도 가지 못했던 할머니는 7남매 중 딸 하나만 빼고 모두 대학까지 보냈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헌신하며 고된 젊은 시절을 보내셨다고 하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은 인간의 삶에 가장 큰 원동력이다. 나도 전부는 아니지만, 아이를 위해서 연고도 없는 전라남도에 내려와 있으니 말이다.
돌아가는 아이의 손에 먹다 남은 뻥튀기와 건빵을 챙겨주셨다. ‘이런 게 시골 인심이구나!’ 이렇게 나와 아이에게 농촌유학에 대한 어색하지만 말랑말랑한 첫인상이 심어졌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할머니 댁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야겠다.
개학을 3일 앞둔 날, 4시간 반을 달려 늦은 저녁쯤 마침내 구례에 도착했다. 마지막 이삿짐을 챙긴다는 핑계로 늦게 출발했기 때문이다. 서너 번 왔던 곳이지만 이날은 왠지 다르게 느껴졌다.
이제 정말 이곳이 내가 살 곳이구나!
그제야 농촌유학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보일러를 틀고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방이 따뜻해질 기미가 안 보였다. 알고 보니 보일러에 기름이 한 방울도 없었다. 도시에서처럼 언제나 버튼만 누르면 방이 따뜻해지는 줄 알았다. 미리 보일러에 기름이 있는지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일 아침 일찍 펜션 사장님께서 등유 차를 불러 주신다고 하셔서 일단 하룻밤만 2인용 온수매트로 견뎌 보기로 했다. 가운데 아이를 두고 양쪽에 남편과 내가 누웠다. 차가운 바닥에 어깨가 닿지 않기 위해 온수 매트 안쪽으로 바짝 붙어서 잠을 잤다. 엄마, 아빠의 온기 때문인지 아이는 차가운 밤공기에도 잠을 잘 자는 것이 신기했다.
아침에 남편이 밖에 나갔다 오더니 집 안과 밖에 공기가 비슷하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아침 새소리와 함께 우리 가족의 웃음소리도 지리산에 퍼졌다. 찌뿌드드한 몸도 풀 겸 집 근처 온천에 갔다. 당당하게 지역민 할인 가격으로 표를 끊었더니 남편 앞에서 어깨가 으쓱해졌다. 단돈 5천 원이지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사장님의 도움으로 아침 일찍 기름을 채워서 그날 밤 이후로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코끝이 시리도록 추웠던 농촌유학의 첫날밤도 우리 가족에게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오늘의 교훈
시골집 보일러 기름은
미리미리 확인하자!
읍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하니 일반쓰레기봉투를 선물로 주셨다. 1인당 20ℓ 세 묶음 총 60 매이다. 아이 것까지 120매를 받아 드니 제법 묵직했다. 일주일에 한 봉지씩 써도 2년 하고도 6개월 동안 쓸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시골 인심과 함께 이곳에서 오래오래 살라는 무언의 압박(?) 같았다. 우리는 일단 1년을 계획하고 왔는데, 이 쓰레기봉투를 다 쓰려면 동네 쓰레기 다 줍고 플로깅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해외에 출장을 가도 밤에 혼자 자는 게 무서워서 불을 켜놓고 잔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이가 있어서 인지, 피곤해서 인지 무서운 생각이 들 틈도 없이 잠이 든다. 아이의 잠투정도 많이 줄었다. 가장 어려웠던 매일 밤 씻고 잠자는 생활 습관 도시에서 보다 아이가 잘 따른다. 우리 아이는 피곤하면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자기 전에 하루 중 가장 기분이 들뜨다가도 금세 울면서 잠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과정 없이 바로 잠을 자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이다. 무엇보다 환절기 아이의 잠을 방해하던 비염이 며칠 만에 호전됐다. 아무리 성능 좋은 가습기를 틀어도 코가 막혀서 잠들기 힘들었던 아이가 이제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잠을 잘 잔다. 아이도 맑은 공기 때문에 코가 막히지 않는다며 신기해한다. 평생 비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남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니, 그것만으로 농촌유학의 보람을 다 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