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에서 제일 좆같은 게 뭔지 알아?”
“...”
“줬다 뺏는 거야! 크~”
동석은 형우의 답변을 기다리지도 않고 소주잔을 단숨에 들이키며 말했다.
빌어먹을, 10억에 맞춰서 인생 설계를 다 해놨는데 갑자기 반 토막이라니..
처음부터 5억이었으면 몰라도..
사채 빚에 도박 빚에 이래저래 처리해야 할 돈이 5억 가까이 된다.
그러니까 빚을 다 갚고 나면 남는 건 거의 없다.
인생 제로 세팅.
꼰대가 남겨준 유산은 분명히 큰 행운이지만 동석은 자꾸만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포장마차의 작은 원형 테이블에 빈 소주 병이 일곱 병째가 되었을 때 동석은 마주 앉은 형우에게 물었다.
“야! 그 새끼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 수 있어?“
”누구...“?
”누구긴 누구야. 그 꼰대의 새끼, 내 돈 5억 가져가는 놈“
”아... 니 배다른 동생?“
”동생은 무슨, 씨발..“
”알아보는 거야 어렵지 않지, 변호사가 이름까지 알려줬잖아. 근데, 뭘 더 알려구?“
”암튼 좀 더 알아봐“
2.
[ 강호용, 남, 28살, 정신지체 2급, 호산나 요양병원에서 치료 중 ]
형우 녀석이 이럴 땐 쓸모가 있다.
겨우 3일 만에 꼰대의 다른 새끼 (배다른 동생이자 숨어?있는 상속자) 의 인적 사항을 전부 알아냈다.
형우 놈은 보육원에서 나오자마자 건달들이 운영하는 흥신소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는 일은 불륜 현장을 추적하거나, 집 나간 여자들을 찾아다니는 게 주요 업무였는데.
덕분에 사람 찾는 데는 나름의 노하우가 제법 있었다.
수입의 가장 큰 부분은 불륜 현장을 찾아낸 뒤,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를 협박해서 돈을 더 뜯어내는 일이었는데,
어쨌거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제부터는 이 녀석(꼰대의 배다른 동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3.
”죽이자고??“
“조용히 말해 새꺄!”
술집 안은 시끄러운 소음으로 아무도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지만 동석은 의자를 끌어당기며 눈알을 부라렸다.
”하.. 돈에 눈이 멀었냐? 아무리 5억이라지만 그걸로 사람을 죽이냐? 그것도 동생을?“
”씨발! 넌 왜 자꾸 동생이래? 동생 아니고 그냥 꾼대가 싸지른 병신일 뿐이야!
어떤 년이랑 바람이 난 건지는 몰라도 꼰대가 우리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 것도 어떻게 보면 그 새끼 때문이라고!
바람난 년이랑 사이에서 낳은 거 일 테니까.“
동석이 흥분하면서 소리쳤다.
아니, 억지로 흥분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5억 받아봐야 빚 갚고 나면 나는 남는 거 하나도 없어!
형우야. 우리 낼모레면 40이야
여기서 한 푼도 없이 다시 시작? 난 자신 없다,
이건 하늘이 준 기회야 씨발!
그리고 병신 새끼한테 그렇게 큰돈이 왜 필요하냐구!“
”...“
”그리고 너도 나랑 마찬가지 아니냐?
너 코인으로 날린 돈이 얼마냐? 거의 억대 아니냐?
너 그거 죽었다 깨나도 못 갚아! 교도소에서 존버할래?“
”...“
형우는 동석의 말에 조금씩 설득되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아닌 게 아니라 동석의 말처럼 자신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주식과 코인으로 적지 않은 돈을 날렸다.
날린 돈도 돈이지만 흥신소에서 남의 가정 불륜이나 캐고 다니는 밑바닥 인생에겐
도무지 더 나아질 것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2억이면 빚 갚고 그럭저럭 뭐라도 해볼 수 있잖아!“
”...“
”아! 언제까지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 거냐고!!“
이제 형우는 자신이 동석의 말에 거의 넘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건.. 동석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할 거야? 말 거야?“
”... 3억 줘!“
형우가 술잔을 벌컥 들이키며 말했다.
”2억 5천, 5억의 반 띵!“
”...“
”...“
동석과 형우는 아주 잠깐 이지만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조용히 눈앞에 잔을 동시에 들었다.
쨍~
두 사람의 잔이 다시 한번 강하게 부딪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