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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Jul 25. 2022

무렵

 

  대학교 때 알게 된 형이 있다. 20살 때 만났던 첫인상은 굉장히 무뚝뚝하면서도 강단이 있는 사람이었다. 우연히 대화를 해보고, 일부러 같이 밥을 먹어보고 같이 공부도 해보니, 아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 게 확 와닿았다. 대충 어떤 사람이었는지 풀어보자면 그냥 어디에서나 볼 법한, 평범하게 생긴 평범한 사람. 말 수가 적고 조용하지만 할 말은 또 하는 사람. 늘 집에서 게임만 할 것 같은데, 사람은 햇빛을 봐야 살 수 있다는 사람. 적당한 취미가 없어 같이 차 타고 바람이나 쐬자고 하면, 먼 곳은 가기 싫다고 하는 사람. 그러면서 나랑 만나는 날은 늘 우리 동네로 와주는 사람. 내가 골머리 앓고 있는 고민을 말하면,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진지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 참 특이한 사람이라, 가끔 내가 이 사람이랑 어떻게 친해진 건지 궁금할 때가 있다.


 우리는 1년에 한 번 만난다. 서로 생일이 엇비슷해 7월과 8월 사이에 만나 밥을 먹는다. 생일 선물은 따로 챙기진 않지만, 가끔 안부의 연락을 한다. 메시지 함을 올려본다. 스크롤을 한 번 올리면 작년이고, 한 번 더 올리면 재작년이다. 우리는 명절에만 안부를 묻는다. 별다른 말이 없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생일 축하해, 명절 잘 보내. 그렇게 쭈욱 올리다 보면 2017년 여름이다. 5년 전이다. 나는 1년 동안 5번 만나는 것보다, 매년 한 번씩 5년 동안 만나는 사람이 좋다. 활활 불타는 것보다 타닥타닥 오래가는 불씨를 더 좋아한다. 얕지만 잔잔한, 그리고 오래.


 만나도 어색한 것이 없다.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하다. 악수로 첫인사를 하고, 그다음 인사는 ‘밥 뭐 먹죠?’이다. 메뉴를 정하지도 않고 만난다. 뭘 먹어도 상관없는 것 같다. 이 앞에 맛있는 쌀국수 집이 있다며 안내한다. 그 가게는 식사를 할 때 조용하게 먹어야 하는 룰이 있었는데 정말 다들 말없이 쌀국수만 먹는다. 일체의 대화 없이 젓가락이 움직이는 소리와 후루룩 소리만 들린다. 가끔 가게 직원들끼리 속닥거리는 것 말고는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조용하다. 나는 그게 참 좋은데, 이 사람은 아니란다. 그래도 내가 가자고 하니까 군말 없이 따라와준다. 고마운 사람. 쌀국수 두 개를 주문하고 나란히 앉아 나는 말없이 물을 건네준다. ‘잘 지냈나요’라는 의미였다. 그는 물을 한입 마시고 내려놓는다. ‘잘 지냈어’라는 의미였다.


 우리는 카페에서 지난 1년 동안 서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를 나눴다. 나는 주로 말을 하고, 그 형은 내 말을 들어준다. 얼마 전에 어디를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 형도 나중에 꼭 가봐라. 싫다. 나는 멀리 가는 걸 질색한다. 그럼 여행은 어떻게 가는데요. 몰라 그냥 가는 거지.. 아니 이 형은 진짜 변한 게 없어! 이렇게 꾸밈없는 대화가 전부다. 굳이 아는 척도, 멋진 척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이 사람은 다 들어줄 테니까. 가끔은 내 편이 되어주질 않아 서운할 때가 있지만, 이 형은 원체 그런 사람이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만다. 이 사람한테는 듣고 싶은 말을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혼내다가도 마지막 한마디 ‘그래도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말을 해주면 사르르 풀린다. 나는 참 단순한 사람이구나. 그럼 나는 웃으며 묻는다. 형은 나 결혼하면 와줄 거예요? 당연히 가야지, 불러주기나 해라. 나는 결혼 못 할 것 같으니까 축의금은 돌려줄 일 없을 거다. 나만 손해야.라는 가식 없는 대화들. 그리고 그 약속은 꼭 지킬 사람이란 걸 알아서 좋다. 늘 그대로 일 것 같아서 좋다.


 어릴 적에는 사진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싫어했는데 요새는 찍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긴다. 나 혼자 찍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보고 싶은 사람과 말이다. 시간이 흘러도 사진 한 장 간직하며 가끔 생각날 때 볼 수 있도록. 이 사람 이랬었지, 우리는 이랬었구나, 오랜만에 보고 싶네라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괜히 낯간지럽기도, 너무 예전 모습 그대로이기도 해서 같이 찍자는 말을 꺼내기 어렵지만, 머물러 남아 있는 기억을 만들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 사람과의 인연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데.


 1년 만에 만나 오랜 대화를 나눈 후, 집에 가자는 말과 함께 카페를 나선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미리 챙긴 우산을 편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옆에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본다. 서로 말없이 걷다가 갑자기 ‘고마워, 나 갈게’ 하고 휙 돌아버리는 사람. 갑작스러운 작별에 ‘네, 내일 봐요’라고 말해도 못 들은 척 가버리는 사람. 그러고는 ‘다음에 또 보자’라는 문자를 바로 보내주는 사람. 그리고 그 뒷모습을 보며 늘 잘 지내길 바라는, 나라는 사람. 그렇게 나는 그 사람 기억에서 1년을 머물렀고, 머무르는 것이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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