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텔라 공항에 막 도착했을 때가 생각난다. 길었던 비행시간에 지쳐 기지개를 쭉 켰다가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카디건을 꺼내 입었다. 여기도 가을이었다. 택시를 타고 예약했던 숙소로 향한다. 창문 넘어 보였던 리스본의 거리는 예상을 벗어난 매력이 있었다. 외관만 보면 레스토랑인데 자세히 보니 오래된 서점이었다던가, 길 옆에 서있었던 말 모형이 실제로 살아있는 말이었다던가 말이다. 나는 담백한 에그타르트와 오래 숙성된 레드와인, 화덕으로 구운 생선구이의 냄새를 기대하며 왔는데 잠시 스쳐가는 동안에도 바다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곳이 리스본 인가.
나는 서쪽의 작은 마을 호카곶이라는 곳에 늘 가고 싶어 했다. 왜 호카곶이냐면 이 마을이 '세상의 끝'이라고 불려서 그렇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중세 시대의 유럽인들은 포르투갈이 세상의 끝자락이라고 생각했다던데, 그럼 세상의 시작은 어디라고 생각했을까. 어디든 끝이 있는 곳에 가봐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택시에 내려 도착한 숙소는 12인실의 남녀 공용 도미토리였다. 듣기만 해도 꽤나 불편할 것 같은 숙소. 어차피 하룻밤만 지내다 갈 곳이라 비싼 호텔에 가고 싶지 않았다. 체크인을 한 뒤 둘러본 방은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걸 보아 이 방에는 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불을 켜고 싶지는 않다. 창문 틈새로 보이는 빛에 의지해 본다.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휙 돌렸다. 문 앞에 어느 중년의 실루엣이 서 있었다. 영어로 불을 켜도 되냐는 질문에 실수로 '네'라고 해버렸다. 불이 켜지자 갑자기 밝아진 탓에 눈살을 찌푸렸다. 조심스럽게 눈을 떠 얼굴을 보니 어느 소설에서 나올법한 할아버지가 보였다. 회색 베레모에 동그란 안경, 손에는 오래된 가죽 가방을 들었고 수염은 덥수룩한데 어딘가 익숙한 모습. 한국에서 몇 번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사람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한 건지 갑자기 던진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반가운 일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우리는 숙소 근처에 있는 세탁소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말을 못 한 지 2주째라 입이 근질근질했나 보다. 묻지도 않은 질문에 나는 리스본에 왜, 어떻게 왔는지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 먹었던 음식들과 돌아다녔던 나라는 어디였는지, 내 이야기만 신나게 늘어놓았다. 할아버지는 말 없이 웃으며 들어주시는데,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는 분이신가 했다. 그래서 나도 여쭤봤다. 이곳엔 어떻게 오셨어요? 할아버지는 한국말이 어눌했다. 아주 오래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 처음 와 낮에는 양말공장에서, 밤에는 바텐더로 돈을 벌었다. 나는 전부터 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은 전부 여유로운 사람이거나, 혹은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한국살이가 너무 어려워 캐나다로 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 만나게 된 아내랑 결혼을 하고 자식들도 낳았지만 아내의 지병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옆에서 보살피기를 몇 년이 지나 결국 사별을 하고 말았다. 아내가 없는 집에서 오랫동안 외롭게 지내다가 할아버지는 결심을 한 것이다. 아내가 죽기 전에 같이 하려고 했던 성지순례, 순례길을 걷자고. 그래서 포르투갈로 온 것이다. 할아버지는 성지순례가 끝나면 에베레스트 등산도 할 거라는데 나는 멋있다고 해야 할지, 마음이 아프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둘 다 하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애달픈 마음이 드는 것이 실례가 아닌가 싶었다. 살아온 인생 이야기야 하루 종일 들을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눈으로 담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느 계절을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할아버지는 가을이 좋다고 했다. 왜 좋냐고 물어보니, 그 계절이 자기 마음과 같아서 그렇단다. 그럼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물어보니, 겨울이 얼른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떨어지는 때가 분명한 계절임에도 얼른 떨어지기를 바라는 계절이기도 한, 영어로 Fall 혹은 Autumn을 의미하는 가을은 이만치도 외로운 계절임이 분명한 것이다. 외로움은 한 계절이면 충분할 테니까.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단풍나무가 보였다. 서늘한 바람에 낙엽들이 떨어진다. 그중에 하나는 내 신발 위로 떨어졌다가 이건 떨어진 게 아니라 나에게 온 것이라고 믿었다. 나도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가 떠나기 전에 나를 불렀다. 어제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에 나는 대답했다. 아니에요. 말하기 힘드셨을 텐데 오히려 제가 감사해요. 순례길 잘 다녀오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고는 웃으며 말했다. '다녀올게요'라고.
호카곶으로 떠나는 기차 안에서 잊어버린 단어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꼭 말하고 싶은 단어가 있었는데 생각이 안 났다. 몇 시간 동안 되뇌다가 도착한 호카곶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이곳이 세상의 끝이라니 생각보다 별거 없구나. 나는 왜 이곳에 오고 싶어 했던 걸까. 절벽에 서서 파도와 바람 소리를 들었다. 시원하다. 가을 냄새가 난다. 저무는 해는 아름다웠다. 어릴 적 '리스본의 겨울'이라는 책을 읽고 늘 눈이 내리는 포르투갈이 보고 싶었는데, 이젠 가을이 아니면 낯선 느낌이 든다. 그러다 문득 잊었던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 부글부글 끓는다는 의미인 '애탄다'라는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