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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Aug 17. 2022

지우펀의 등불


 파도가 아닌 바닷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창문 너머 보였던 기차에 쌓인 눈은 12월의 겨울다웠다. 추운 날씨에 마음이 시렸고 그 마음(心) 하나가 4 획수라는 걸 알았다. '구등분'을 지우펀이라 부르는 곳이었으며, 내 마음이 조금씩 고장 났던 곳이기도 했다.


 늦은 저녁, 지우펀에 도착하고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헤맸다. 땅콩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채로 개미굴처럼 생긴 길을 들어갔다 나오고 사람들을 따라갔다가 일부러 따라가지 않기도 하고, 결국 도착한 곳은 작은 돌담길 앞이었다. 낯선 곳에서 쭈그려 먹는 아이스크림은 일품이었다. 이상하게 맛은 참 좋았는데, 한숨이 나왔다. 마음 한구석이 허했다. 혼자인게 아쉬웠다. 여행은 을 혼자다녀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전혀 그러질 못하겠다.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돌담 너머로 작은 불씨가 보였다. 엄마와 아이가 등불을 만들고 있었다.


 얇은 천과 안에 들어있던 작은 초. 아이는 줄을 잡아당기고 엄마는 둥글게 모양을 만들었다. 바다 건너 보게 되는 등불은 처음이었다.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가까이 가는 것은 실례인 것 같아 남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에 넣고 멀찍이 보기만 했다. 모양새가 나름 갖추어가더니 엄마는 아이에게 붓을 건네준다. 아이는 고민을 하더니 붓을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옆으로 휘갈기다가 나중엔 점을 두 번 찍었다. 4 획수였다. 아마 본인이 알고 있는 단어 중 가장 쉬운 단어였을거다. 아이는 그 단어가 마음에 드는 듯, 붓을 엄마에게 돌려주며 배시시 웃는다. 뭐라고 적었을까 궁금했다. 고개를 기울어 글자를 보았다.

마음 심(心)이었다.


 본래 등불에는 소원을 적는다. 행복하게 해 주길 바라고, 건강하게 해 주길 바라고, 혹은 사랑과 명예를. 그게 아니라면 다시 이곳에 오게 해 달라는 마음이던가 그곳으로 보내달라는 마음이 보통일 거다. 나도 어렸을 적 등불에 소원을 빌기도 했는데 그게 겨울이라면 기필코 산타할아버지였고, 여름이라면 첫눈이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니았다. 그러니까 그 아이의 마음 心 하나는 뭐냔 말이다. 어떤 것에 대한 결심(決)이었을까, 무언가에 대한 진심(眞)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에 대한 애심(愛)이었을까.


 엄마와 아이는 소원을 빌더니 등불을 하늘로 올려 보냈다. 올라가는 등불을 보며 아이는 엄마의 손을 꼭 잡더니 무언가를 물어본다. 아이의 질문은 저게 하늘에 닿을까요, 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하늘을 보며 대답한다. 닿을 거야. 네가 올려 보낸 건 등불이 아니라 네 마음이라, 는 대답이었을 것이다. 나 혼자 맘대로 해석하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나도 가슴에 한 획수 적었다. 저 아이의 마음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저게 하늘에 닿을까요?라는 질문이라면 물론, 이미 그곳에 닿았다.라는 대답이 좋을 것 같다.


 지우펀을 떠나 타이베이로 돌아가는 길에 마음 하나를 사고 싶어졌다. 고작 등불 하나에 마음을 뺏긴 나는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어떤 ‘心’ 이든 간에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란 결코 가벼운 존재가 아니었다. 등불의 의미가 궁금해져 사전을 찾아봤다. 본 의미는 '등잔에 켠 불'이나, 또 다른 의미로는 '앞날에 희망을 주는 존재'라고 쓰여있다. 앞날에 희망을 주는 존재라.. 마음을 크게 한 입 먹었다. 이곳에 다시 와야겠다. 이곳에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와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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