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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Aug 31. 2022

무화과

 너는 무화과를 좋아했다. 좋아하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알면서도 너에게 좋아하는 이유를 물었다. 너는 '무화과'라는 이름이 좋다고 했다. 무화과. 없을 무에 꽃 화라, 꽃이 없는 과일인가 싶었으나 사실은 열매 속의 붉은 부분, 우리가 먹는 부분이 꽃이었다. 열매껍질은 꽃받침이며, 과즙 또한 무화과 꽃의 꿀이었다. 겉만 봐서는 모르고 속을 열어봐야 볼 수 있으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것이 꽃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영롱해 보였던 빛깔은 사실 설익었던 것이었고, 계절의 끝자락처럼 곧 떨어질 거라 여겼던 과실은 무르익었던 것이었다. 무화과를 영글게 만들었던 물과 햇빛을 마음으로 빗대면 관심과 애정이 아니었을까 싶은, 그러니까 내가 너에게 좋아하는 이유를 물었던 것은 너도 나만큼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추운 겨울에도 너는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고 항상 장갑을 끼고 다녔다. 나는 계절에 상관없이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서 너를 보면 마냥 신기했다. 나였다면 손을 어디다 둘지 몰라 어색해할 것 같은데 너는 오히려 안 보일수록 더 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가을바람이 슬슬 부는 날엔 내가 가을이라도 탄 듯 네 손을 꼭 잡고 싶었고, 머뭇거리는 내 손을 보며 너는 의식이라도 한 듯 장갑을 벗어 손을 잡아주었다. 나도 그랬겠지만 너의 손에는 이미 땀이 맺혀있었다. 아마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따금씩 너의 주머니에서 과일이 나왔을 때는 그 계절을 실감할 수 있었다. 봄에는 사과를, 가을에는 자두를, 겨울에는 귤을. 그 조그마한 손에 뭐가 자꾸 잡히는지 너는 참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구나 싶었다. 한 번은 네가 나에게 살면서 단 한 가지의 과일만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을 먹을 거냐 물었다. 나는 무슨 의미로 물어본 걸까 싶어 구태여 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떠올렸다. 무화과였다. 그건 일단 단 한 가지의 과일이었고, 내가 그것을 먹을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순간 웃음이 빵 터졌다. 너는 깜짝 놀라 뭐가 웃기냐고 투정을 부렸지만 나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무화과지 뭐겠어. 네가 그걸 좋아한다면 나도 그걸 좋아할 수 있겠지. 바보 같고 미련해 보여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네가 좋다면 나도 좋은 건데.


 사실 나는 무화과보다 블루베리를 좋아하고, 떫은 것보다 새콤한 걸 좋아하고, 그냥 먹는 것보다 얼려 먹는 걸 더 좋아하는데 네가 이걸 아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어릴 때 눈에 좋다는 말을 듣고 과일가게에 곧장 뛰어갔다던가, 한 움큼 집어 입에 왕 넣어 먹었다던가, 그리고 그게 내 첫 블루베리였다는 것들. 너에게 이미 말해주었던 것 같은데 너는 이걸 기억하고 있을까. 만약 누군가 무슨 과일을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블루베리라고 하겠지만, 네가 나에게 했던 질문을 너에게 다시 묻는다면 너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너도 단 한 가지의 과일이 블루베리였을까. 그럼 나는 정말 무화과를 더 좋아하게 될 텐데.


 너를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 나는 블루베리를 가장 좋아하지만, 네 옆에 있을 땐 무화과를 가장 좋아하는구나. 늘 1순위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0순위가 생길 수 있구나. 발갛게 달아오르는 내 볼을 숨기기 바빠 내 안에서 꽃이 피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버렸다. 마치 네가 좋아하는 그 무화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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