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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May 28. 2023

애증

 

 애증이라는 말이 어려웠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거고 미워한다면 미워하는 거지,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건 무슨 말일까. 완전한 반대말의 공존은 이토록 사람 마음을 어지럽히고 서로를 끌어당긴다. 단순하지 않아야 사람 마음이라는 것. 하나로 정의되어 있지 않아야 사랑이라는 것도, 미움이라는 것도 존재한다는 것. 미우면서 사랑한다는 말은 계속 미워하게 해 달라는 마음일 수도 있겠고 계속 사랑하게 해 달라는 마음일 수도 있을 거다. 그러니까 완전히 사랑하거나 완전히 미워할 수도 없어서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기엔 내 마음이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언젠가 어떻게든 해결될 문제겠지만 그때까지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너를 사랑하고 미워하겠다. 이런 마음의 류가 아닐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에 스스로 미련이 남았다면 그건 애증이 아니라 아직 그리워한다는 건 아닐지. 미움보다 사랑의 감정이 더 큰 것은 분명할 거다. 너를 사랑하지만 미워해, 보다는 너를 미워하지만 여전히 사랑해,라는 말이 피부에 더 와닿을 거다. 사랑은 미움보다 훨씬 위험하고 뜨거운 거니까.


  비가 오는 날, 고기리의 어느 카페에 갔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따듯한 커피 한잔을 시켜 마시다가 뒤에 있는 어느 커플들의 대화를 들었다. 일부러 들으려 한 건 아니고, 조용한 카페에서 유일하게 들렸던 말소리였다. 둘은 다투고 있었는지 짜증 섞인 목소리가 자주 들렸다. 얼핏 들어보니, 여자는 매사 진지하지 못하는 남자에게 불만이 많았다. 주말 약속을 남자가 일방적으로 취소한 모양인데 이유인즉슨, 바이크 타는 게 취미였던 사람이었고, 주문했던 바이크가 토요일에 온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남자는 토요일은 안되니 일요일에 만나는 건 어떻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여자는 일요일엔 약속이 있다며 거절했다. 남자는 그럼 다음에 만나야겠다고 혼자 단정 지었는데 나로서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바이크야 일요일에 가져갈 수도 있을 텐데, 일요일에 문을 닫으면 나중에 가면 될 텐데 여자친구와의 약속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깨버리는 경우는 뭘까. 내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겠지만, 모르겠다. 그러자 여자는 짜증을 팍 내더니 바이크가 나보다 중요하냐며 엉엉 울었다. 아.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 남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여자는 그게 왜 당연한 지 이해를 못 했다. 남자도 여자에게 쌓인 게 많았는지 오히려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토요일에 쉬면 너도 좋지 않냐고, 하루 정도는 안 만나도 되지 않냐고 물었다. 티격태격하던 둘 사이에 정적이 흘롰다. 고요한 순간에 놀라 뒤를 돌아보고 싶었으나, 그건 의도적으로 듣고 있었다는 것이니 나는 그러지 못했다. 커피를 마시는 척 들었던 생각은 여자는 무슨 마음이 들었을까, 싶었던 것뿐.


  여자는 헤어지자는 말을 하며 자리를 벌떡 일어나 카페를 나갔다. 남자는 한숨을 푹 쉬며 따라 나갔다. 그때까지도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다가 커피를 두 모금 더 마신 후에 뒤를 돌아 그들을 봤다. 비를 맞으며 서있는 남자와 여자가 보였다. 울고 있는 여자를 달래주고 있는 남자는 무슨 마음을 하고 있었을까. 상처를 줬다는 미안한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자기를 좀 더 이해해 달라는 투정이었을까. 나는 여자의 마음에 좀 더 공감을 했던 것인지 남자가 달래고 달래도 흔들리지 않았으면 했다. 내뱉은 이별의 말을 다시 삼키지 말았으면 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애증이라는 걸 보게 됐다. 남자가 눈물을 닦아주는 동안 여자는 남자의 옷깃을 꽉 잡은 채 서있는데 그건 마치 분하고 억울하지만 그만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같았달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아직까지 사랑한다는 마음. 상처를 준 사람이 하필이면 사랑하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그 상처까지 안아줘야 하는, 그런 마음. 어렵다. 사랑은 어려운 마음이다. 애증의 애가 사랑(愛)이라면, 애증의 증은 미워할 증(橧)이겠지만, 나는 어쩌면 그 증이 더할 증(增)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랑이 쌓이고 쌓여 그 무엇보다 견고해진다면 참 좋을 텐데. 그래야 비가 쏟아져 물이 침범해도 견뎌낼 수 있을 텐데.


 적적한 냄새가 났다. 장마철의 비냄새였는지, 커피원두의 진한 산미 향이었는지, 쓰지만 자꾸 맡아보고 싶은 냄새. 어쩌면, 사랑이 부글부글 끓는 냄새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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