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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Oct 08. 2022


 너. 너는 멀어질수록 가까이 오는 사람이었다. 가까워질수록 멀리 떠나는 사람이었다. 멀리서 바라만 봤을 때는 네가 내게 준 기억의 조각들을 한데 모아 옆에 두었고, 그것은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라 생각했다. 네가 옆에 없어도 나는 외롭지 않았지만 정작 내 옆, 고작 반 걸음 거리에 있었을 땐 오히려 한없이 그리워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너는 더 이상 내가 기억하는 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라는 존재는 여전했으나, 너를 바라보는 내가 변한 건가 싶기도 했다. 만약 평행이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했으며, 차원을 넘나들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을까.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운 사람.


 너는 설렐 때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있었다. 그건 초조해서가 아니었고, 불안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마음을 부여잡고 싶을 뿐이었다. 그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세게 한 번 무는 게 아니라 야금야금 오랫동안 물었던 건, 아마 그 마음을 네 멋대로 주무르고 싶어서 그랬을 거다.

너는 설렐 때 한쪽 눈을 깜빡이기도 했다. 윙크를 하려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이 네 앞머리를 쓰다듬는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가끔 무언가에 앓아누울 때는 정말 그것에 치었던 사람이었고, 멍든 마음을 꾹꾹 눌러보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비가 내리는 날엔 무언가의 감정에 사무쳐 몇 시간 동안 눈물을 흘렸다거나, 눈이 내리는 날엔 이제 곧 다가올 마지막이 안타까워 사람들 없는 곳에 눈사람을 몰래 숨겨두기도 했던. 그런 너는 누구보다 감성이 깊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너는 네가 평범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너의 첫인상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너는 너도 모르게 인상을 늘 찌푸리고 있어 사람들은 다가가기도, 말을 걸기도 어려워했다.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 억지로 웃기를 반복하고 먼저 말을 걸려고 노력했다. 아마 너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모습이 너답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오히려 사람들을 멀리하고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너는 너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과 다른 외모와 성격에 말이 느려지고 답답해졌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너를 보고 나는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 네가 참 애처롭게 느껴졌는데, 너는 스스로에게 그런 감정을 얼마나 느꼈을까.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고 친구를 사귀기 힘들어 늘 이어폰을 끼고 다녔던, 오죽하면 손바닥에 Yes와 No로 문신을 하고 싶다고 말했던 너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러다 우연히 쓴 일기에 너는 글로도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는 마음에 너는 매일같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기를 좋아했고, 시를 좋아했고, 산문을 좋아했다. 가끔 좋아하는 책을 읽은 날에는 다 읽고 난 후에도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너는 처음과 두 번째는 늘 느낌이 다르다며 배시시 웃곤 했다. 남들과는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지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오로지 글밖에 없었으니, 바보처럼 해맑게 웃고 있는 너는 속으로는 얼마나 애가 탔을지 나는 지금도 너를 보면 마음이 아리다.


 그런 너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낀 날을 기억한다. 너는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운 사랑이 없어 사랑 자체를 사치라고 생각했다. 영원할 수 없을 거라 여기며 어차피 끝날 인연을 왜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서늘한 어느 가을밤, 동네 놀이터에서 느꼈던 첫사랑의 감정은 이토록 보통의 사랑도 영원할 수 있겠구나 깨달았다. 너는 사랑이란, 일상과 같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고, 아침밥을 먹을 때는 너도 모르게 떠오르는 그 사람 얼굴에 히죽 웃었다. 사랑 노래를 들으면 온통 그 사람에게 대입되는 것 같았고 우연히 구름을 본 날에는 이쁘다는 마음보다 그 사람과 같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기에, 그 구름이 밤이 되어 흐릿하게 보일 즈음에는 생각나는 단어가 고작 보고 싶다 한 마디였지만, 너는 보고 싶다는 말 대신 내가 김밥 사 들고 놀이터 앞으로 갈게.라고 말했던. 너의 첫사랑은 그 놀이터에서 시작되고 놀이터 앞에서 끝나게 됐음에도 그 김밥의 맛은 아직도 간직할 수 있었다. 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알려준 그 사람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했으나 마음속에 보이는 그 사람이 네가 좋아했던 그 사람으로 남아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너는 사랑이란, 유효함과 동시에 시간이 멈추는 것이라고 했다. 너는 사랑이란, 분명 시간을 초월하는 것일 거라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도 누군가의 사랑이 되었으면 했다. 사랑이 이렇게 아름답고 애틋한 거라면, 너도 그걸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랑받는 느낌이 뭔지 알기를 바랐으니까.


 너는 죽기 전에 오타루에 가고 싶어 했다. 영화 ‘러브레터’를 보고 처음 알게 된 삿포로의 작은 마을. 그곳을 가면 속이 뻥 뚫릴 것 같다고 했다. 묵혀있던 마음이 훨훨 날아갈 것이라고 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에 너는 네 마음을 목메어 소리칠 수 있는 곳일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나도 모르게 영혼 없는 반응을 보였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해야 속이 뻥 뚫린다면 꼭 해보는 게 맞을 거다. 너는 잔정이 많아 마음을 쉽게 못 버리는 사람이니까. 너는 그곳에 간다면 꼭 겨울에 가고 싶다 말했고,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뜨거운 것을 식히고 싶은 거구나 싶었다.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겨울은 흰 눈이 내리는 절경이겠지만 나는 네 마음속엔 이미 이름 모를 설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미 마음속으로 목메어 소리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네가 이 모든 얘기를 나에게 들려줬을 때 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처럼 하얗고 겨울처럼 순수한. 대체 어떤 마음이었길래 고요하게 눈물만 그렇게 흘렸는지. 훌쩍 거리는 코도 없이, 붉어지는 눈과 찌푸리는 미간도 없이 그저 눈물만 뚝뚝 흘렸던 너는 어떤 마음을 하고 있었을까. 이런 질문도 너에겐 상처일 수 있기에, 구태여 묻지 않고 말없이 안아주고 싶은 내 마음을 지금의 너는 아마 모를 것이다.


 나는 너를 늘 그리워하겠지만, 네가 나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너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모르는 것이 많았고, 너는 반대로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겠지만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네가 좋다. 말하지 않아도 너는 다 알아줄 테니까.

이만 치도 추운 겨울에 네 손을 잡고 내 주머니에 폭 넣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 주머니가 따듯해서가 아니고, 그곳에 예쁜 선물이 있어서도 아니고 단지 떨리는 내 손을 만지게 해주고 싶을 뿐이다. 뜨거운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부디 넣었던 손을 빼지 말아 줬으면 한다. 쑥스러워 얼굴을 들지 못해도 한 번쯤은 나를 바라봐 줬으면 한다. 나는 그 시절의 나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들뿐이다. 나는 네 손을 평생 잡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눈 덮인 설산을 보며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너에게 소리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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