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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정샘 Mar 01. 2023

교육과정 작성의 맛 2부

끝인 듯 끝이 아닌 끝 같은 너어어

일 년 동안 공부할 모든 교과의 시수를 맞췄다.


이제 진도표 작업에 들어간다. 진도표란, 각 교과의 학습내용과 수업시기를 알 수 있는 표이다. 프로그램에서 막 생성된 진도표를 보니 과학의 날이 과학으로 잡혀있고 체육대회가 체육으로 잡혀있어 교과서 진도의 뒷부분이 졸업식 이후로 배정되어 있다.


’응. 졸업하고 수업 들으러 오렴.‘


이 아니라 졸업식 전에 모든 진도가 끝나도록 조정해야 한다.


반대로 어떤 과목은 12월 중순에 일찌감치 진도가 끝나 ‘오늘 뭐해요?’ 소리를 수십 번 듣게 생겼다.


어디 조물조물 교과진도 반죽 좀 해볼까? 늘이고 줄이고 합치고 나누고. 진도가 늘어지는 교과는 유사한 학습내용을 묶어 감축한다. 반대로 진도가 너무 일찍 끝나는 교과는 활동을 추가하여 차시를 증배하거나 단원 끝에 심화보충활동을 넣는다.


이제 ‘출력하기’를 눌러 한글파일을 생성한다. 드디어 수행률 99%! 생성된 한글 파일을 학년부장님께 갖다 바치면 된다.

손 탈탈.


창체 진도표에 한자교육 있던데요?
우리 학교는 한자교육 안 하는데


이런 망할!

교과서가 따로 없는 창체(창의적 체험활동의 줄임말로 자율/동아리/봉사/진로 이렇게 네 영역으로 구성된다)는 학습내용을 학교와 학년에 맞게 직접 한 땀 한 땀 입력해야 한다. 내가 마음이 급했네, 급했어! 하하하. 학급자치회의와 학교에 융단폭격된 각종 계기교육과 안전교육을 집어넣고 다시 진도표를 생성한다.

이제 끝!

정말 끝!


와다다다 화장실 한번 다녀온다. 정말 꾹 참았다.


드디어 본격적인 수업준비 시작!

6학년은 3월 한 달에 일 년이 달렸다. 학급 세우기가 그만큼 중요하단 뜻이다. 사상누각이 되면 학급은 형체도 없이 무너지고 모래먼지가 아니라 폭력과 무질서가 풀풀 날릴 것이다.


학급 세우기 주간엔, 자기소개, 생활 수칙 안내와 학급규칙 제정, 공동체 활동 및 학교폭력예방활동 등을 넣는다. 창체 자율과 진로활동, 도덕, 미술, 체육 등이 관련 교과 되시겠다. 진도표와 연동된 첫 주 주간학습계획을 열었다. 첫 주의 학급 세우기 활동을 까맣게 잊고 작성한 연간시간표가 ‘나 예쁘지?’하며 해맑게 떠있다.


바느질로 자기소개를 하고, 수학 분수의 나눗셈으로 학교폭력을 예방하지 않을 거라면 관련 교과들로 바꿔야 한다.


3월 2일 자율, 자율, 도덕, 도덕
3월 3일 진로, 진로, 미술, 미술, 도덕, 도덕


그렇게 3월 10일 금요일까지 야무지게 학급을 세워보겠다며 짠 주안의 시간표는 더 이상 부장님께 제출한 그 시간표가 아니었다.


부장님,
저희 반 연간시간운영계획이
좀 많이 바뀌었습니다.

괜찮다. 바뀐 건 고작 7일. 연간시간표를 크게 건드리지 말고 사부작사부작  3월 내에서 조정해 보자! 그렇게 난 만신창이가 된 시간표를 마주했고, 결국 나는 그 버튼을 또 눌렀다.


 기초시간표 대로
반영을 초기화하시겠습니까?


리쌍이 부릅니다. ‘내가 웃는 게 아니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다 식은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초기화되어 0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연간시간표로 눈을 돌렸다. 오늘은, 전직원 출근 마지막 날이다.


나는 내일도 학교에 간다.


#봄방학이뭐에요?

#먹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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