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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아니라 변화를 연구하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by 다온 Mar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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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연구하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 -


나이 50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상실의 시대’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건강했던 몸도 하나둘씩 기능이 떨어지고 병이 나기 시작하고, 부모님들도 돌아가시기 시작하는 나이 이기도 합니다.

자녀들도 홀로 독립하기 시작하면서 곁을 떠나가고, 직장에서도 자의든 타의든 일을 그만둘 때가 도래합니다.

이러한 상실하는 것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되면 우울증이 오기도 하고 삶이 무력해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내 것’ ‘내  자식’ ‘내 재산’ ‘내 능력’ 등 50이 되기까지 이루어놓은 모든 유무형의 자산들에 대해서,

내가 잘나서, 내가 이룬, 내가 소유한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내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태어날 때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고 세상에 나와서,

태어나면서 내가 부모를 선택한 것도 아니고, 지금의 자식을 내가 선택해서 낳은 것도 아니고,

또한 장사를 하더라도 손님이 찾아와서  돈을 벌었을 건데 타인이 도와주지 않고 이룬 게 어디 하나라도 있던가요?

이 모든 게 처음부터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데, 어디 상실이라는 말이 가당치나 한 것인가요?

그저 인연이 되어서 내게로 왔고, 그 인연이 시효가 끝나가니 떠나가는 것일 뿐이겠죠.

내 몸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인연이 되어 지금의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서, 이제 그 인연이 끝나가니 몸의 기능들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언젠가는 생을 마감하겠죠.


나이가 들어감이 허망하다는 말을 하고자 함이 절대 아닙니다.

상실되어 가는 것들에 대해서 집착하거나 붙잡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더 겸손하고 존중하고 그리고 더 사랑해야겠죠.

언제나 후회는 더 사랑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거니깐.


~~~~~~~~~~~~~~~~~~~~~~

붓다의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연기법’의 발견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류의 철학과 과학의 역사 이래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아무도 몰랐을까 하는 의아함도 들고

붓다께서 발견하고 가르쳐주신 ‘연기법’은 인류전체에 혁명적 사상이고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붓다는 매우 분석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학의 대가 임에 분명합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것은 고행을 통해서도 명상을 통해서도 아닙니다.

매우 인간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서 ‘연기법’의 깨달음을 얻어서 모든 존재의 실재와 괴로움에 대한 문제를 해결을 하였습니다..


‘연기법’은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함으로써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함으로써 저것이 멸한다’라는 모든 존재의 속성은 상호 관계성을 띄고 있다는 발견입니다.

아울러 존재 자체가 처음부터 고정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서 드러나고 이것을 우리는 ‘존재‘라고 인식합니다.


이러한 ‘연기법’의 사상은 붓다의 가르침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자아’는 스스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에 의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무아’ ‘공’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자아의 ‘연기성’에 대한 설명입니다.

불교의 ‘자비’의 실천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뜻 보면 절대 자비를 베풀 수 없는 악한 존재라도, 그 사람이 어떤 인과에 의해서 어떤 환경에 의한 관계성으로 그러한 존재가 되었는지 들여다보면 ‘자비심’과 ‘측은지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모든 존재가 상호 관계성을 띄고 있다는 ‘불이법’을 통해서 ‘동체대비심’, ‘자비’의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진정한 ‘자비’ ‘사랑’도 역시 연기법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불교의 ‘중도’는 모든 존재나 사건에 대해서 좋고, 나쁨 등 이분법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존재의 실체를 바로 보라는 ‘정견’을 강조하는데, ‘중도’ 또한 ‘연기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기법’을 이제야 ‘양자역학’을 통해서 현대 물리학도 다루기 시작하였습니다.

양자역학에서 양자 중첩이론은 모든 가능성이 중첩되어 존재하다가 우리가 인식하는 순간, 상호작용 하는 순간에 하나의 상태, 존재로 결정된다는 이야기 합니다.

‘양자중첩’ 이론뿐만 아니라 무한한 공간에서도 상호 소통하는 ‘양자 얽힘’ 이론도 물질의 상호 관계성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통찰입니다.

모두 연기법과 같은 말입니다.


이러한 존재의 ‘연기적 속성’에 대해서 붓다는 ’ 12 연기’라는 방편으로 상세히 설명합니다.

‘12 연기’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명 - 행 - 식 - 명. 색 - 육입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 사


붓다는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12 연기에 대한 통찰로부터라고 말합니다.

찬찬히 붓다의 사유의 과정을 따라가보겠습니다.

보리수나무아래에서 결부좌를 하시고 깊은 사유에 빠져들어 있는 붓다를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이 일어나면()

대상에 대한 이름과 형상에 대한 관념이 자리 잡고(명. 색)

역으로 사유해 보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름과 형상에 대한 분별이 있으면 (명. 색)

인식이 자라나게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상에 이름이 없는 것은 우리는 볼 수가 없습니다. 눈으로 본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인식에는 들어오지 않는 거죠.

즉 ‘식’과 ‘명. 색’은 상호 연기적 관계로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입니다.

‘식’과 ‘명. 색’의 상호작용은 결국은 ‘분별의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존재에 대한 분별의식으로

안. 이. 비. 설. 신. 의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느끼고 촉감을 느끼고 인식을 하는 작용이 (육입)

외부 대상들과 상호작용을 하면 ()

느낌과 감정이 생기고 ()

욕구와 욕망이 생기고 ()

집착이 생기게 됩니다. ()


이러한 ‘식’’ 과 ‘명. 색’에서 ‘취’까지의 과정이 반복이 되면,

작은 눈덩이를 굴리면 점검 더 큰  덩어리가 되듯이 ‘’라는 관념의 덩어리 ‘5 온’이 만들어집니다. ()

애기가 태어났을 때는 ‘나’라는 관념이 없다가 점검 커가면서 외부 대상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라는 관념이 생기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나’라는 것에 대해서 불교에서는 5 온 즉 5가지의 덩어리가 뭉쳐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5 온은 색. 수. 상. 행. 식을 말하는 것으로 형상, 느낌, 생각, 의지, 인식을 말합니다.)


객관적인 내가 존재한다 ()라는 망상이 생김에 따라,

내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다 (노. 사)는 환상을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나’라는 에고에 집착으로 ‘괴로움’을 피할 수는 없다고 붓다는 말합니다.


붓다는 위와 같이 ‘나’라는 관념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통찰을 얻어시고, 즉 괴로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어시고,

또다시 깊은 사유에 빠져 듭니다.

‘식’과 ‘명. 색’이 ‘유’를 만드는 즉 ‘나’라는 인식을 만드는 중요한 열쇠인데,

식’과 ‘명. 색’은 어떻게 만들어 질까?

아하 ~~~

이러한 ’ 12 연기’에 대한 무지로(무명)

행동, 말, 생각을 하면()

‘식’과 ‘명. 색’이 만들어지고, 허망한 망상인 ‘나’라는  관념덩어리를 만드는구나.

그러면 결론적으로 ‘무명’을 부수면, 즉 ’ 12 연기’ (연기법)에 대한 통찰을 가지면

‘나’라는 에고에 대한 집착 사라지고, 괴로움이 소멸된다는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 12 연기’를 쭉 훑어보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각자는 아래와 같이 내용을 이해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내가 여러 가지 지식으로 감각기관을 통해서 사물을 보고, 듣고, 만지고 하면,

온갖 느낌과 생각이 일어나는데,

좋은 것은 가지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기고,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집착이 생기는구나.

그래서 이러한 집착이 괴로움을 만드는구나,

이렇게 ’ 12 연기’를 이해하면 괴로움이 사라질까요?

위와 같이 ’ 12 연기’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나’에 대한 에고를 철저하게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인식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욕심을 내고 집착을 내고….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12 연기’는 ‘나’라는 허망한 에고 덩어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즉, 실재가 아니라 망상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 12 연기’를 배우는 이유는 망상이 망상임을 알기 위함입니다.

알아차림, 위빠사나, 정견 등의 용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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