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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한 숲길 Apr 23. 2024

얼떨결에 일만 삼천보.

황토 묻은 맨발로 보도블록 위를 걷다.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꾸 쳐다봅니다. 황토가 덕지덕지 묻은 맨발로 어색한 표정 지으며 두 명의 아줌마가 길을  걷고 있으니 신기한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다들 얼굴 한 번, 발 한번 보면서 의아해하며  지나갑니다. 산책하던 어린이집 아이들도 신기한뚫어지게 쳐다봅니다. 참 민망합니다. 우린 낮의 보도블록 위를 맨발로 걷고 있는걸까요.


  나이 들수록 건강의 소중함을 절감하며 제가 먼저 맨발 걷기를 제안했고 S씨는 그 제안에 응했을 뿐입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르다가 숲의 맑은 공기와 눈이 맑아지는 초록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결국 정상에 올랐었지요. 맨발 걷기의 매력은 대단했습니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흙의 감촉은 사랑스러웠고, 자연과 하나 되는 듯한 경이로움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맨발 걷기 하러 나서길 잘했다며 우린 뿌듯했어요. 전에도 이 산에 몇 번 와 보았지만 정상을 찍은 적이 없었던 저는  황톳길을 만났을 때 무척 기뻤어요. 처음 와 보았다는 S 씨도 황톳길을 보더니 엄청 좋아했죠. 정상에 오르는데 한 시간이 걸렸으니 내려가는 길도 한 시간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이 빗나갔어요. 내려오다가 길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빠지고 만 것이지요. 둘이 대화에 집중하다가 어디선가 길을 잘못 든 모양입니다.  올라가는 길은 촉촉한 흙이었는데 내려오는 길 중간부터 자갈밭이 펼쳐져서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덤 앤 더머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등산객들에게 길을 물으면서 어떻게든 처음 올라왔던 입구길로 돌아가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등산로 입구에 벗어놓은 신발과는 아주 멀고 먼 맞은편 등산로 입구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우리 택시 타고 저쪽 주차장으로 갑시다."

  "그래요."

  "어! 맵을 보니 걸어서 20분인데 그냥 걸어갈까요?"

  "음... 그럽시다."

  "좀 창피하지만 나름 재미있네요."

  "아하하, 글쎄요"


  우린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결국 처음 출발했던 입구로 돌아왔어요. 마치 힘든 임무를 완수한 것처럼 노곤함과 보람이 느껴지더군요. 세상에! 확인해 보니 만 삼천보나 걸었네요.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껌이겠지만 운동부족인 제겐 무리였느지 종아리와 무릎이 아프네요. 다행히 S씨는 멀쩡했습니다. 평소에 자전거를 열심히 탄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운동은 꾸준히 해줘야 합니다. 알아도 실천이 어려울뿐.


  오랜 시간 기다려 준 신발을 찾아서 신었어요. 신발과의 상봉이 이렇게 반가운 건 처음입니다. 몸에 먼지를 에어건으로 털어낸 후 차에 오르니 긴장되었던 마음에 평안이 차오릅니다. 둘은 마주 보며 한참을 웃었고요, 다음 주 같은 요일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아니, 매주 한번씩 만나기로 합니다. 다음엔 절대 길을 잃지 않겠지요? 음... 그건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해봐야지요. 다음 산행이 벌써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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