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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 Feb 12. 2023

독일 화장품 가게에서 배운 것

다양한 파운데이션의 색깔을 보고

독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2주 정도 흘렀는데 아직도 여독이 풀리지 않는다. 매일 편의점에 들러 하리보 피치를 사 먹고, 독일에서 사 먹었던 초콜릿의 맛이 잊히지 않아 쿠팡으로 직구를 알아보기도 했다. 어제는 분데스리가 경기를 보는데 독일에서 직관했을 때의 그 짜릿함이 떠올라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모든 게 새로웠다. 나와 눈코입이 모두 다른 인종들부터 처음 듣는 독일어, 그리고 낯선 풍경들까지 눈앞에 있는 모든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겨울에 독일을 간다는 말에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겨울 독일은 날씨가 그리 좋지 않다고. 내내 흐리다가 낮 3시가 되면 해가 져버린다고. 하지만 나에겐 그마저도 기분 좋은 순간들이었다.
정말 여행하는 내내 흐렸던 날씨, 독일에 살고 있는 사촌언니와 함께 카페에 갔었는데 당당하게 전 ‘아이스 카페라떼요!’ 를 외치다가 ‘독일에는 아이스를 팔지 않아…’라는 언니의 말, 축구경기를 보러 갔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축구에 열광하는 독일인들의 모습까지, 모든 게 나에게는 행복한 낯섦이었다.


뮌헨에서 쇼핑을 하다가 한 화장품 가게를 들어갔는데 파운데이션 파는 곳이 보였다. 나는 홀린 듯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황인종의 피부색뿐이 아니라 백인부터 흑인의 피부색까지, 다양한 색깔이 모여 있었다. 나는 그 화장품 가게에서 넓은 세상을 한 눈에 보았다. 그 때 나는 다시 한 번 느꼈다
‘아! 여기는 지금 독일이구나’

유난히 크게 보이는 얼룩이 있다. 흰옷을 입고 밥을 먹다가 옷에 음식이 튀었을 때, 스타킹에 올이 나가 작은 구멍이 났을 때 말이다. 그 땐 세상 사람들이 꼭 나만 쳐다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괜히 어깨를 쭈그리고 남 눈치를 보고 얼룩을 가리려고 요상하게 걷는다. 사실 알고 보면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데 말이다. 작은 것에 집착하다보면 그렇게 큰 걸 놓치게 된다.
요 근래에 내가 그랬다. 사소한 것에 매달렸고 큰 숲을 볼 줄 몰랐다. 여유가 없었고 나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넓은 세상을 봤고 큰 숲을 보았다.

세상은 이제껏 내가 집착해왔던 작은 얼룩이 아닌 무궁무진하게 넓은 곳이었다. 여러 사람들, 여러 문화, 여러 생활 방식들이 한데 모여 이루어진, 꿈꾸고 도전하기 참 좋은 곳이었다. 화장품 가게에 있던 여러 종류의 파운데이션의 색깔처럼 말이다.

내가 겪은 세상은 우주의 아주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고. 드넓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도 해야 할 것도 참 많다고. 이번 여행은 나에게 그런 시선을 안겨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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