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시점에 그림책에 매료되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나. 우울과 무기력한 일상에 찾아온 그림책이 주는 위로와 격려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그림책 테라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좋은 타이밍과 기회로 그림책 테라피 공부를 하면서 그림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만나고 있다.
다양한 분들과 함께 그림책을 공부하면서 감사한 점도 있고, 도전도 많이 된다. 그에 반면 약간 위축됨과 동시에 질투심이 느껴질때가 있다. 어떤 순간이냐면 예를 들어 줌(zoom)으로 함께 온라인 강의를 듣다보면 참석한 분들의 얼굴 뒤편에 그림책이 빽빽하게 가득 꼳힌 책장이 보인다. 교수님이 강의 중 말씀하시는 대부분의 책을 소장하고 있거나 알고 있는 분들도 있고. 그리고 예전부터 그림책과 관련된 공부나 일을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나보다 훨씬 더 일찍 그림책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림책 세상에 발 딛으신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그리고 이상하게 질투가 생긴다.
이 질투심의 근원은 뭘까.
나도 분명 어릴 때 그림책을 읽었을텐데 언제부터 나는 그림책과 멀어졌을까? 아마도 책이라는 것이 학교 시험과 연결되기 기작했을 때 부터가 아닐까 싶다. 부모님은 나에게 한번도 공부를 강요한 적은 없었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중, 고등학생들이 그렇듯 책장은 그림책이 아닌 각종 시험문제집과 수학의 정석, 영어 사전으로 빼곡했던 것 같다.
그 후 성인이 되어서는 자기계발서, 엄마가 되고나서는 육아 코너만 주구장창 찾았다. 소설, 시, 수필 등 다른 문학책들는 효율에 미쳐 살았던 나에게는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내가 그러는 사이 이미 다른 분들은 그림책과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는 것에 이상하게 질투가 났다. 그리고 그림책이 나의 유년시절과 지금의 나 사이 그 공백의 어느 한자리도 차지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걸까. 어릴때 친하게 지내던 동네 오빠를 커서 다시 만났는데 훤칠한 훈남으로 멋지게 자란거지. 그래서 눈에 하트가 그려질만큼 반해서는 짝사랑에 빠져 설레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데, 알고보니 이 오빠가 자기네 학교 킹카라 여자들이 졸졸졸 따라 다니는거였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랄까.
얼마전 방탄의 태형이 인스타 스토리에 Matt Maltese라는 영국의 인디 뮤지션 사진을 올리곤 “ i’m jealous of someone who knew you already” 라고 쓴적이 있었다. 처음엔 뭐 질투까지야. 그랬는데 요즘 내가 아주 오랜만에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고는 종종 태형이의 그 말을 곱씹게 되더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더 알고 싶고,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 처럼 그림책이 나에게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그림책속에는 소설, 시, 자기계발서, 육아서, 판타지... 모든게 다 들어가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육아서보다 그림책이 훨씬 내 삶에 영향을 끼칠줄 누가 알았을까.
사실 나는 이런 경험을 예전에도 한 적이 있다. 성경책에 사랑에 빠져 스위스까지 날아가서 성경연구학교를 마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 그땐 밥보다, 잠보다 선경이었다. 땅속에 묻힌 보화를 발견해내듯 진리를 발견하던 그 시간들은 돈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 나는 여전히 성경을 사랑한다. 아무리 그림책이 좋아도 사실 내 삶의 반석과 기둥이 되는 것은 바로 성경책이다. 성경은 나의 삶의 본질이다.
그림책도 많이 사랑한다. 하지만 그림책 자체가 나의 본질이 되지는 못한다. 나는 도구로서의 그림책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의 자녀들과 함께하는 놀이 예술로써,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를 건네주는 따듯한 메세지로써 그리고 현실에 매여 좁아진 나의 시선을 넓혀주는 도구로써 그림책을 사랑한다. 그리고 남녀노소,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스스럼 없이 다가가는 매개체로써, 마음에 오랫도록 기억하고 싶은 한편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써 그림책을 사랑한다
나의 글들을 통해 유년시절 헤어진 그림책과 다시 상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림책과 멀어진 그 시간들을 숨가쁘게 달려오면서 어쩌면 우리의 내면아이가 그 곳에 남겨졌있을지도 모른다. 그림책을 통해 ‘타임리프’를 경험하시길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어디가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느곳에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 헤어진 그림책과 꼭 다시 만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