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영혼에 대하여
제3의 눈을 아시는가. 어느 영화에나 나오는 외계인 이마에 달린 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외계인은 조금 무섭지 않나. 난 비위가 약해서 그런 캐릭터를 잘 보지 못한다. 으 끔찍해라. 그 눈의 역할은 나와 같은, 아니 쌍둥이라도 다른 점은 분명 있을 테니 비슷한 이라고 말하자. 어쨌든 나와 비슷한 영혼을 알아보는 역할을 맡았다.
단순히 취미나 관심사가 비슷하다고 영혼이 닮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신이 보고 듣고 사랑하는 영화이거나 음악이거나 소설이거나 작가를 사랑하는 이들은 굳이 과장하지 않아도 한국에 몇천 명은 될 것이다. 백예린의 콘서트에서 수천 명의 취향이 같은 사람을 보았다. 그중에 분명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어바웃 타임을 좋아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또 그중에 인상파 화가들에 관심이 꽤나 많은 이도 분명 있다. 우리는 모두 닮은 영혼인가? 아니다. 그러니 우리의 취향이 같다고 마치 도플갱어처럼 서로에게 영혼의 단짝이라든지, 운명이라든지 착각하지 마시라. 그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우리일 뿐이다.
그래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와 비슷한 영혼은 관심사와 취미가 달라도 알아보게 된다. 어떻게 아냐고? 그건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는가. 제3의 눈이 알아볼 거다. 그건 제3의 눈이 가진 목적이자 역할이자 존재의 이유다. 온전한 제3의 눈의 영역이란 말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면, 경험해봤다. 분명 미묘한 취향의 차이부터 상황과 배경의 거대한 차이를 인지했지만 나와 닮은 영혼이란 사실을 감지해버렸다. 그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시력이 무려 1.7이나 되니 믿을만하다.
다행히도 제3의 눈은 영혼의 닮음만 감지할 뿐 그 차이를 감각하지 않는다. 사실 미묘한 차이부터 거대한 차이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누구는 차이를 인지하며 서로의 환상이 깨져가는 일만 남았다고 할테지만, 본질적으로 우리의 영혼이 닮았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사실에만 집중하게 된다. 제3의 눈이 영혼의 닮음을 감지한 순간부터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닮은 영혼을 마주하는 시간이면 마치 온전한 나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어떤 걸 느꼈냐면 지금의 내가 비춰지고 과거의 내가 그려지고 미래의 내가 보였다. 나와 닮은 영혼을 품은 그분도 같은 이야기를 내게 전했다. 내가 외로움을 퍽 많이 타는 사람이어서 그런 건지 혹은 누구나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실 자체로 큰 위로를 받았다. 이 세상에 나와 닮은 영혼이 적어도 하나는 있구나라는 위로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지구별에 나와 닮은 영혼이라니! 너무나 반갑고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사실이다. 길을 걷다가 친구와 닮은 사람을 친구라 착각만 해도 놀랍고 즐거워하는 우리이지 않은가. 이런 사실에는 호들갑을 떨어도 된다. 호들갑은 이럴 때 떨라고 존재하는 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3의 눈은 나와 닮은 영혼을 알아보는 역할만 맡았다. 만 원짜리 거짓말 탐지기처럼 결과를 전기를 뿜거나 띠링하는 소리로 알리지는 않지만, 정확하고 스근하게 영혼의 닮음 그 유무만을 감지해준다. 우리는 <적어도 나는> 그렇게 똑똑하고 이성적이고 현명하지 않다. 닮은 영혼의 감지는 그 자체로 우리를 이미 방방 뛰게 만들어서 긍정적인 상상만을 하늘 멀리 올려버린다. 이런 거 진짜 싫어하는데, 그런 이들을 위해 오지랖을 부려 내가 알려주겠다.
그 영혼이 당신에게 선한 영향을 미칠 수도 혹은 악한 영향을 미칠 수도, 행복을 선물할 수도 괴로움을 줄 수도, 외로움을 달래줄 수도 끝없는 외로움으로 빠뜨릴 수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제3의 눈은 모른다. 당신도 모른다. 그걸 잊지 마시라. 그래서 지레 겁을 먹어버리는 겁쟁이는 닮은 영혼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버릴 수도 있다. 나 또한 아직 너무 어리고 어리석고 모자란 탓에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또 닮은 영혼을 발견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그 순간이 오면 어리고 어리석고 모자란 나는 이쪽을 택하련다. 그리고 당신도 당신 마음대로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