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시간부터 시작되는 화상 수업을 켜놓은 아침. 전공과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싶던 건지, 어제 마시다 남긴 와인이 아까워서인지, 몽글한 기분을 채우고 싶은 건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결국 이런 변명들의 합이 아침부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펴게 했고, 와인을 마시게 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엔 이런 모양새의 아침도 있다.
사랑의 선 밖에 있으면서 사랑 이야기는 도통 소화할 수도, 뱉어낼 수도 없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침부터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폴을 고발하는 시몽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은 프랑스 파리가 아니다. 또 사랑과 행복을 핑계와 편법으로 또 체념으로 살아온 어떤 이에 대해 고발을 할 용기도 자격도 되지 않는 나다. 그런데 아침부터 쓰린 속을 느끼며 반짝거리는 햇살을 맞고 있자니 말하고 싶다. 그 누구도 그러지 않길 바란다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쓴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했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자신을 파괴하고 함부로 할 권리는 물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으로서 각자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며 사랑을 하고 또 행복해야 할 의무도 있다.
권리는 어떤 일을 하거나 누릴 자격을 의미한다. 각자가 자신의 신체와 생각의 주인이라는 자격이 있다. 따라서 선택에 따라 자기 자신을 파괴할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무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 부분의 권리와 의무는 양립할 수 없다. 의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마땅히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 한다. 또 사랑하고 행복해야 한다.
아무 목적 없이 태어나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목적만을 찾는 게 유일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또 감각할 수 있는 우리다. 감정과 감각은 현재에 살게 한다. 또 감정과 감각을 기억한다면 이는 우리의 과거가 되고, 기대와 불안을 섞어 상상하게 된다면 미래가 된다. 그렇기에 다양한 감정과 감각을 느끼고 향유하며 탐닉해야 한다. 이런 행위가 우리 자신을 소중히 아끼며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야말로 우리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찾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사랑이라는 가치는 더욱이 그래야 한다. 다른 모든 가치와 신념 그리고 믿음까지 송두리째 흔들고 뒤집어 놓을만한 힘이 있는 녀석이다. 그렇기에 아주 조심스럽고도 잘 감각해야 한다. 만남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말이다. 잘 보내는 과정도 어떤 모양의 사랑이다. 대부분 만남부터 유지하는 과정은 잘 향유하고 탐닉하고 노력하지만, 보내는 과정은 그렇지 않다.
이미 상해버린 사랑을 부여잡고 냉장고 같은 마음에서 보내주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과거의 나도 그랬다. 차디찬 냉장고였지만 상하다 못해 썩어 없어지고 나서야 비울 수 있었다. 나에게 참 못할 짓이란 걸 알게 되고서는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는 다짐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겪고 나서는 한동안 금방 상할까 쉽게 들여놓지 못했고, 조금만 이상한 듯싶으면 내놓아버렸다. 잘 익은 사랑을 제때 들여놓고 제때 내놓는 것이 이상적인 모양새다. 그게 어려워서 문제지만. 나처럼 또 폴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잘 들여놓고 잘 내놓아 줘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 잘 익은 사랑을 새로 들여놓기 위해서. 또 따스한 온도에서 회복해 다른 냉장고에 들어갈 내놓은 사랑을 위해서. 이 과정도 우리 자신을 위해 꼭 해야 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나는 타인의 행복과 사랑을 빌어주기보다 내가 더 행복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진심으로 당신들도 그러길 바란다. 언젠가 핑계와 편법으로 또 체념으로 흘려보내는 이가 없는 세상에서 만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