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 / 황석영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기란 이렇게도 힘든 일일까.
간척 사업이 한창인 그곳의 인부들은 사정이 어렵다.
임금을 받지만 생계를 이어가긴커녕 생활비로 쓰다 보면 되려 빚을 지어야 할 상황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이런 곳에 동혁이 오게 되고 대위와 함께 노동 처우 개선을 위한 파업 쟁의에 나서며 갈등은 극에 달한다.
1971년에 쓰인 이 소설 속의 현실은 지금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졌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의 시선에서 본다면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와 비교하여 임금은 많이 올랐지만 덩달아 물가 역시 급격하게 올라 그 체감도 또한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우 개선은 지금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故 전태일 군이 분신하며 소리쳤던 것과 얼마나 달라졌나.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사망 사건의 산재 처리가 인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콜센터에서 근무하며 지정된 콜 수를 못 채워 계속 야근을 하다 스스로 저수지에 뛰어들어 사망한 사건도 21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또한, 여전히 하청업체의 저급한 관리로 인한 안전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소설 속에서 경영진은 비인간적인 행동을 보인다.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내부 단속을 하기 위해 깡패들로 감시조를 꾸리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정당한 대가를 위한 쟁의를 해야 하지만 오히려 움츠려 들고 있다.
뿌리까지 박힌 노예근성.
그것이 그들의 더 나은 삶을 향한 의지까지 박살 내어 버린 것이다.
동혁과 대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투쟁은 결국 '이렇게라도 살면 다행'이라는 식의 근성 때문에 지고 만다.
노동자들은 사 측의 회유에 쉽게 넘어가 버렸다.
이 소설이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각 인물들의 개성이 뽐내고 있는 치밀한 내적 갈등이 극을 잘 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혁이 바라보는 시선이 절절하다.
어쩌면 작가의 시선, 아직 남아있는 식자들의 양심일 수 있는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암담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우리와 닮은 그들이 있다.
그곳엔 신성한 노동의 대가를 영위하지 못하는 현실의 모순이 존재하는 삶이 있다.
제발, 우리는 배운 대로만 살자.
누구도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성실하게 일하는 삶은 자체로 이미 인간으로서 소명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스스로 낮추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