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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Oct 13. 2024

정분의 시작_2

전화

2. 전화


남자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시야를 뿌옇게 흐리는 먼지 때문이 아니었다.

가족, 오늘 아침까지도 투닥거리며 싸운 가족 때문이었다.

앞으로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 발이 엉켜  철판 카펫의 구멍에 발이 걸렸다.

부주의한 탓에 넘어질 뻔한 남자는 지게를 벗어 옆에 두고 벽돌 위에 앉았다.

현장에서는 그냥 막 만들어진 돌이나 포대 자루 위에 앉아 쉬기도 한다.

"이런 씨발."

남자는 고민 끝에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자 욕설을 한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이 꼴이 된 걸까.


"김사장, 오야 가다가 있지, 왜 직접 곰빵을 해?"

현장의 책임자 중 하나인 이반장이다.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담배만 피운다.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마음은 지친 데다 굳이 남에게 떠들 만한 일도 아니었다.

사실, 이반장도 풍문으로 들은 게 있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이다 보니, 무언가 일이 있으면 징검다리 건너듯 전해 듣기도 하였다.

'김사장 마누라가 미쳐간다던데.'

'그 집에 뭔가 사달이 난 모양이야. 요새는 교회에도 안 나와.'

이반장은 김사장을 유심히 바라본다.

물어보고 싶지만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보니 그가 스스로 말하길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거, 뭐냐. 오늘은 돈내기니까 적당히 시마이하고 3시쯤 가자고."

이반장이 김사장 옆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술이라도 함께 마시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김사장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입에서 쏟아진 뜨거운 연기가 공중에서 식어갔다.

담뱃불이 새빨갛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주머니에서 전화기의 진동이 느껴졌다.

곧 벨소리가 주머니에서 새어 나와 두 사람의 적막을 깨웠다.

아들의 번호.

김사장은 머뭇거렸다.

평소라면 바로 받았겠지만 이 전화는 꺼림칙했다.

바로 아침에 일어난 사건이 뇌리에 스친다.

솔직히 두렵고 겁이 났다.

또,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쩌지.

"안 받아?"

이반장이 김사장에게 채근한다.

그가 말하는 입술 사이로 담배 연기가 삐져나온다.

뭔가에 홀린 듯 김사장이 스와이프 하여 전화를 받는다.

"아빠! 아빠! 이거 어떻게 해? 집에 좀 오면 안 돼?"

김사장은 말이 없다.

아니, 말을 할 수가 없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집에 가고 싶지 않다.

아내가 보기 싫고 죽은 강아지를 대면할 자신이 없다.

"아빠! 둘이 싸우고 난리 났어. 정말 큰일 날 것 같아. 나 찔렸어."

아들은 거의 울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딸과 아내의 고함 소리가 계속 들렸다.

우당탕탕 넘어지는 소리, 무언가 떨어지고 물건이 끌리는 소리가 귀를 따갑게 했다.

"아빠, 진짜 아파, 나, 저 새끼가 날 찔렀다고..."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김사장은 거짓말을 했다.

그저, 전화를 빨리 끊고 싶었던 것뿐이다.

"알았다. 기다려, 곧 갈게."

남자는 아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제 어쩌나.

김사장은 도망갈 궁리부터 하였다.

더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모른 척, 남인 척 벗어나고 싶었다.

"도대체 뭔데 그래?"

이반장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어왔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일한 사이.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부부 내외 역시 서로 아는 사이.

우직하고 성실한 사내.

김사장은 이반장에 대한 생각을 끝내고 도망갈 구멍을 찾아냈다.

"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있겠어?"

말이 없는 이반장에게 김사장이 연신 말을 쏟아낸다.

"자네가 나 대신 우리 집으로 가 줘. 나는 경찰서에 들렀다가 집으로 가야 돼."

"그게 무슨 소리야? 집에 무슨 일이 있어?"

"제발. 제발, 한 번만 들어줘. 설명은 나중에 할게."

이반장은 어처구니없어할 말이 없었다.

급한 일이라면 직접 집으로 가야 하고 경찰 신고는 가는 길에 직접 해도 되지 않은가.

그런 이반장의 얼굴을 읽었는지 김사장은 우는 얼굴로 이반장의 손을 텁석 잡았다.

"나 좀 살려줘. 자네는 그냥 집에 가서 무슨 상황인지 확인만 하면 돼. 제발. 제발 한 번만 살려주라."

이반장은 김사장에게 덥석 잡힌 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김사장, 먼저 갈 테니까 빨리 오도록 해."

"고마워, 정말 고마워."

김사장은 바로 손을 떼더니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전화기를 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반장은 그런 김사장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해서 김사장의 집 앞에서 초인종만 눌러보라고 할 참이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만약, 조금이라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신고할 계획이었다.

이반장이 멀어지자 김사장은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사실, 그는 누구에게도 전화한 적이 없었다.

그저 이반장 앞에서 급한 용무로 전화하는 척했을 뿐이었다.

이 남자는 그저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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