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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16. 2024

너는 이제 우리의 가족이 아니다

변신

변신은 읽을 때마다 어둡다.

아니, 내 기분이 암흑에 싸일 때마다 변신을 꺼내어 읽는 것 같다.

작가인 카프카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그것을 방증하는 듯 불편하고 체할 것만 같다.

삶의 내내 불안하고 흔들렸던 카프카는 강박증에 시달렸는데 그러한 비극이 그의 천재성을 각성하게 만들었을까. 

궁금하다.

카프카는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린 걸까, 강박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글을 쓴 걸까.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의 영향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한 카프카는 그의 작품 속에서 아버지란 존재를 강압적이고 무심한 존재로 그린다.

그리고 그러한 아버지 아래의 희생양이 된 자식은 보통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고통에서 벗어난다.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은 얼마나 지독한 스트레스를 생성하는가.

습관처럼 굳어버린 정신과 항거를 잊어버린 무력함.

내가 처한 상황이 부조리하지만 대항이 아닌 수용을 선택하는 그들에게서 거세된 욕망이 보인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욕구를 말하지 않았다.

그저 가족을 책임졌으며 제 일을 다했으면 될 일이 아니다.

나의 삶을 내가 욕망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벌레가 된 것이다.

더 이상 퍼낼 수 없는 고갈된 욕망은 존엄마저 빼앗았다.

욕망이 있어야만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다.

인간으로서의 형질도 잃어버린 그에게서 자아가 해체된 인간이 보인다.

그래, 변신한 것이 아니라 해체되었다.

슬프게도 해체되었으니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

그래서 그레고르의 가족은 동정심을 잃어버리고 그를 혐오한 것이다.

처음엔 그레고르의 일을 하게 된 분노가 발생하고 막상 일을 해보니 그레고르가 필요 없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자 증오로 이동하였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

가부장으로서의 권위를 되찾은 아버지가 그레고르에게 던진 사과는 '더 이상 너는 우리의 가족이 아니'라는 선포이다.

이제 가족이 바라는 건 그레고르가 스스로 죽는 일이다.

끔찍하게도, 이제 가족과 그레고르 사이엔 소통이 필요하지 않다.

인간이 벌레와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썩어가는 사과를 등에 꽂은 채로 그레고르는 죽음을 맞이한다.

가족들은 하숙생들을 쫓아내고 이사를 준비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난다.

그들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두렵다.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보단 구성원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자체가 두렵다.

기능을 상실했을 때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버려질 수밖에 없다.

소통의 부재는 늘 있는 일이다.

세대 간에서, 계급 차에서, 남녀의 다름에서 우리는 소통을 생각보다 잘하지 못한다.

만약, 누군가 내게 사과를 던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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