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우주로 떠나는 첫 장은, 세이건 박사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앤에게 바치는 헌사로 시작합니다.
우주과학과 친하든 무지하든 친절하고 따뜻한 그의 설명은 두꺼운 책이 주는 부담도 이겨낼 수 있게 하죠.
그리고 지면에 같이 실린 많은 사진자료는 글의 이미지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 주어 교양과학의 교과서라도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시리우스가 백색 왜성이니, 중성자별의 중력이니, 하는 과학 이야기를 반복할 생각은 없습니다.
코스모스를 읽고 저마다의 우주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는지 혹은 변화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저마다의 우주를 가진 채 사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우주는 무한대의 공간이며, 내가 어떤 존재인지 고민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삶을 ‘커다란 나’로만 살아가다 보면 진짜 ‘나’를 돌아볼 기회가 적어집니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 일이 ‘나’를 채워가는 일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광대하고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우주를 공부한다는 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주의 커다란 눈으로 불리는 헬릭스 성운을 코스모스 다큐멘터리로 처음 보았을 때, 마치 우주와 얼굴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파란 눈의 존재가 직경 6광년의 가스 덩어리라는 설명은 이 성운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느낌입니다.
그러니 더욱 동경하는 마음이 앞서지만 우선은 이렇게 보이는 우주라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한 마음이 일고 호기심도 커집니다.
이렇듯 호기심으로 여행을 시작한 코스모스는 인류의 가능성과 위대함으로 끝을 냅니다.
세이건 박사는 인류의 가능성을 우주의 그것과 비슷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사가 비단 우주만이 아니라 인류와 지구에 대한 전반적인 역사를 설명하며 우리 인류의 위대한 조상들을 기린 까닭은 그가 인류라는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남겨진 책의 페이지가 적어질수록 그의 어조는 분명해지고 마지막 13장에서 방점을 찍습니다.
인류가 더 넓은 우주로 나아가 그 이상을 실현하는 미래가 곧 다가올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합니다.
만약, 책을 읽고 ‘우린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를 떠올렸다면, 우린 같은 느낌을 공유한 것입니다.
지금 나의 우주는 변하는 중입니다.
이 여행은 광대하고 무한한 우주와 비교하면 먼지와도 같이 작은 나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기에, 이토록 무한한 공간에 소속된 인류로서 내가 가진 가능성에 대해 명확해지는 기분입니다.
나의 존재는 우연과 우연, 그리고 또 우연이 겹치는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백 년도 되지 않을 역사로 생을 마치겠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런 이유가 나의 존재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줍니다.
언젠가 우주로 돌아갈 유한한 존재이기에 이 지구에서 유랑하는 동안 나를 더 채우고 또 비우려는 노력을 계속할 겁니다.
비록, 내가 가진 삶이 끝나도 인류의 역사는 지구와 함께 계속될 거라는 사실도 참 멋지게 다가옵니다.
내가 사라져도 세상은 잘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 반갑습니다.
칼 세이건 박사가 안내한 코스모스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나의 코스모스 유랑은 아직 많이 남아있죠.
언젠가 무한의 우주로 다시 돌아갈 유한의 삶, 나의 코스모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