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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Apr 03. 2024

브라보 마이 라이프

솔직히 말하면, 기혼자가 되고 아이의 아빠가 됐을 때만 해도 내 청춘이 끝난 줄만 알았다. 꿈을 좇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던 기동력과 언제나 연기만을 생각하던 열정을 이제는 원하는 만큼 품고 쏟을 수 없으며,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중점을 두고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인간으로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실제로 그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배우로서의 삶을 뒤로한 채 당장의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게 되면서 영화 출연은 고사하고 영화를 감상하기도 힘든 삶에 접어들었다. 


아내가 아이를 품고 있던 십 개월, 그리고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두 돌이 되기까지 어느덧 삼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그간 나는 운이 좋게 큰돈을 들이지 않고 두 곳의 가게를 맡아 운영했지만 결국 하나는 문을 닫고 하나는 꾸준히 적자를 내다 최근 근근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될 만큼 유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출해야 할 곳은 많고 수입은 불안정해 언제나 돈이 될 만한 일을 호시탐탐 노리며 살아가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다. 


배우로 출연한 작품을 본 사람들은 나를 마주할 때마다 신기해하기도 하고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막상 들쑥날쑥한 수입 구조와 현실적인 출연 빈도에 대해 알게 되면 흔히 아는 연예인들의 삶만큼 모든 배우들이 호화로운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는 걸 알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누군가는 굳이 개인적 고충을 밝힐 필요가 없다고 말하곤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고충을 밝히며 연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타인에게 손을 벌리려는 것도 아니며 그저 자기 객관화에 충실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사실 경제적 자기 객관화는 금융 어플만 들어가 봐도 손쉽게 알 수 있다. 삼십 대 중후반의 평균 재산과 저축 수준, 소비 습관의 통계를 기준으로 어느 수준에 있는지 퍼센티지로 정리를 해놓은 어플이 나의 현재를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자기 객관화란 비단 경제적인 부분에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스스로를 바라보는 기준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함이기에 보다 폭넓은 분야에서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일이다. 


때때로 타인의 기준을 무시해야 하는 순간이 있고, 때로는 고집을 버리고 스스로를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반드시 얻어야 할 것,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야 할 것, 평생은 아니더라도 지금은 잠시 내려놓아야 할 것 등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하게 되며 포기한 것들에 대한 상실감을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다. 


하루종일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는 아이와 털을 날리는 대형견과 같이 사는 우리 가족은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에 대한 허상을 깨부수고 오래된 주택으로 이사 왔다. 보수할 곳이 많지만 다른 세대(帶)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이와 개와 마음 편히 살 수 있고, 작은 마당과 옥상을 어떻게 꾸미고 누구를 불러 무엇을 할 건지 상상하며 집을 꾸며가는 시간에 즐거워하고 있다. 


거창한 직장이 아니더라도 각자 일거리를 구해 돈을 벌어오고 오전엔 내가, 저녁엔 아내가 운동을 다녀오며 건강을 챙기고 동시에 적절히 육아를 분담하고 있다. 어쩌면 평범보다는 못 미치는 삶일지 모르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성향을 담아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며 우리가 부족한 게 아니라 남들과 다르다는 인식을 키워나간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돈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에 집중하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개인적인 취미의 욕심도 부려본다. 


아직도 서툴지만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아빠로서의 삶에 모두가 잠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거나 연기 연습을 하고, 아이를 등원시키고 매일 운동을 하다 보니 청춘이 되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아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종종 갈 수만 있다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조금 더 부단히 노를 저어 좋은 남편이자 멋진 아빠가 될 수 있다면 젊음이 지녔던 열정과 패기가 아니라 책임과 노련함으로도 충분히 또 다른 청춘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가사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노래 제목이 매일 아침 외치는 구호가 됐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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