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18
우물 안과 우물 밖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외교적으로 구분 지어진 한국 땅덩어리를 우물 안이라고 명명하고 이를 벗어나면 우물 밖인 걸까? 아니다. 개인의 관점에서 국가라는 개념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거시적이다.
일례로 개인을 '한국인'이냐 아니냐로 구분 짓는 잣대는, 대외적으로는 주민등록증이지만 내재적으로는 환경이자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이처럼 필자가 생각하는 우물 안과 밖은 개인의 규모에서 나뉜다.
이제 한국인이라는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보자.
개인에게 우물 안과 우물 밖이란 무엇일까?
한국과는 멀리 떨어진 프랑스 파리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하나는 토종 한국인 모임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국과 관련이 없는) 외국인 모임이었다.
각기 다른 모임에서 '나'는 스스로가 서로 다른 사람인양 행동한다. 한국어에는 한국의 문화가, 영어에는 영어의 문화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이 아니라 '영어'의 문화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한국의 문화는 '한글'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한국어 사용자가 경험한 환경, 그리고 한국인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는 것이다. 영어의 문화 역시 알파벳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미국, 영국, 인도를 포함한 수많은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돈과 사람을 이끄는 힘을 가진 오늘날의 환경이 영어의 문화를 만든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영어를 가지고 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이 영어의 문화인 것이다.
문화는 행동양식을 반영한다. 매운 음식과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나, 어른을 뵈면 허리 숙여 인사하고 주택보다 아파트가 편한 나, BTS와 봉준호 감독의 경사가 이유 모를 벅차오름으로 다가오는 나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이 모든 것들은 당연하면서도 소중한 문화적 가치를 지녔지만, 세상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수없이 다양한 문화 중 하나일 뿐이다. 문화의 의미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문화는 행동에 녹아있고, 언어는 문화를 포함하기에,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내 정체성이 달라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본인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한국인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향적인 반면 국제 친구를 만나면 활달하고 주도적이라든가?
여행 중 다양한 사람을 사귀며 느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물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것은 언어이자 사람 간의 관계이다. 필자는 중학생 때부터 우물 밖 세상을 갈망했다. 우물 안이 충분히 따뜻하고 살기 좋았을지는 몰라도, 우물 안과 밖이 선사하는 경험은 분명 서로 달랐다.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나이에는 간접적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 때부터는 직접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추구했다.
여전히 우물 밖 세상이 보여주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고향에 살다 서울 갔을 때 달랐고, 한국에 살다 해외 갔을 때 달랐다.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는 그 선택들이 나의 이야기를 나만의 이야기로 채워주고 있었다.
첫 번째 배낭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느낀 소회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다른 하나는 '다음 도전을 찾자'였다. 오랜 꿈을 이룬 채 추억으로만 간직하기에 이 업적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했다. 자연스럽게 다음 도전을 찾고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하던 중에 깨달은 사실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말은 인생의 절반도 살아보지 않은 20대가 하기에 지나치게 귀여운 말이라는 점이다.
인생에는 도전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으며,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는 만큼 내 가치관도 빠르게 수정된다. 방황하는 과정이 있어야 성공의 맛이 달듯이, 도전할 맛이 나야 실패할 용기가 생긴다.
도전하는 모든 이가 약간의 좌절과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을 통해 실패를 딛고 계속해서 도전하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마친다.
우물 밖 세상 유럽 편 #018 - 완결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가명이며 이야기는 사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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