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일
나는 말라깽이였다. 말라깽이에 안경잽이였으니, 필연적으로 몇 대 맞으며 다니는 그런 아이였다. 밥을 많이 먹지 않았던 건, 애 입맛에 먹을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밥상 위엔 늘 나물 반찬과 시래깃국이 있었고, 그다음이 물에 만 밥이나 간장계란밥이었다.
과자도 거의 먹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버터와플’이라는 과자를 좋아했던 것 같다. 밤늦게 몰래 먹다가 들켜 한 통을 통째로 먹어보라 다그침을 받았고, 나는 침대 끝으로 뛰어 도망쳤다. 그게 트라우마로 남은 걸까? 아니, 더 큰 트라우마는 시래깃국을 토하고 먹고를 반복했던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유치원에서 음식을 남기면 혼이 났던 모양이다. 내가 겁이 많았던 건지, 유치원이 엄했던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밥을 많이 먹기 시작했다. 비로소 입맛에 맞는 음식이 나왔던 것 같다. 학교는 원자력 발전소의 보조금을 받아 급식 퀄리티가 좋았다.
마음 맞는 친구와 일부러 제일 늦게 가서 남은 음식을 잔뜩 받아 30~40분씩 먹곤 했다. (어쩌면 ‘많이 먹는 아이라는 칭호’를 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운이 나쁜 날엔 흰 밥에 김치만 먹어야 했다.
과자도 좀 먹었다. 매운 새우깡을 사서 겨울 운동장 계단에 앉아, 찬 바람에 식혀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살은 찌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 때, 한 동기가 내게 “갓 태어난 송아지 같다”고 했다. 대학 시절엔 돈이 없어서 학식과 기숙사 식당이 유일한 식사 공간이었다. 나쁘진 않았지만, 먹는 것이 즐거움이 되진 못했다. 콧물덮밥이라 부르던 밍밍한 마파두부 덮밥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군대에 갔다. 훈련소 밥은 끔찍했지만, 매일 흙바닥을 구르고 돌아오면 생쌀이라도 감사히 씹어 먹던 시기였다. 자대는 GOP 통신소초였는데, 소규모 인원이 생활하는 곳이라 그런지, 취사병이 훌륭했던 건지 지금 돌아봐도 밥맛이 좋았다. 결식은 징계 사유였고, 매일 고기가 꼭 한 번은 포함되었다. 정기적인 단백질 섭취와 운동이 병행되면서 근육과 살집이 붙기 시작했다. 그래도 뱃살은 없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 자본주의의 물살에 휩쓸려 나도 모르게 돈을 좇기 시작했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를 고민했지만, 결론은 ‘먹기 위해서’였다. 본가에서 떨어져 살면서, 우리 가족이 평생 먹지 않았던 곱창부터 파인다이닝까지 접했다. 그것은 신세계였다. 물론 예외도 있었지만, 비싼 음식에는 대체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애정 어린 음식으로 입과 배를 채우는 경험은 특별했다. 먹기 위해 살고 싶었다. 그 이상의 특별함은 허상이라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입사했으니, 앵겔지수는 폭발했다.
술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해적의 럼주, 러시아 사람들의 보드카, 하루 노동을 끝낸 아저씨들의 초록 소주.
그것은 낭만이자 생활양식처럼 보였다. 식사에는 늘 술을 곁들였고, 주말엔 하루 종일 취해 있던 날도 많았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자 뱃살이 붙기 시작했고, 하루 종일 앉아 일하다 보니 가속이 붙었다. 이제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것도 버겁다. 뱃살은 비만, 성인병 등 여러 이름으로 바뀌어 내 삶에 노란불을 켰다.
돈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걸 마음껏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무너졌다. 요리하는 시간이 아까워 집 안엔 식기 하나 들이지 않았고, 근 3년간 회사 밥과 식당 밥으로만 살았다. 먹는 양은 많았지만, 먹는다는 행위가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었다.
식사에서 나는 언제나 주체가 아닌 객체였다. 가축의 삶을 살고 있었다. 식사는 순간적인 쾌락으로 전락했고, 직장과 관계, 자본 관리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삶을 지배했다. 내가 가장 추구했던 ‘먹는 것’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긴 순간, 외부로부터 도망칠 나의 세계는 사라졌다.
이제는 먹는다는 것에 대한 주체성을 되찾아야 한다.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냥이나 채집까지 할 수 있다면 더 좋을까? 먹는 것은 그저 마구잡이로 섞고 튀겨서 삼켜버리는 단순한 욕망의 영역이 아닌 듯하다. 우선, 먹을 것에 대한 태도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