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추석에 고향을 찾지 않지?

숨을 참아야 하는 집

by Bae

나는 성남시 정자동의 작은 원룸에서 지내고 있다. 본가는 부산이다. 지난 몇 년간 명절에 꼭 본가를 찾곤 했지만 이번엔 정자동에 머물렀다. 주변 사람들과 가족에게는, 명절엔 교통편이 어려워 평일에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아빠는 선뜻 그러라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명절에 산소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외동이라는 말에 일부 지인들은 무언의 힐난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그들이 짐작했듯, 교통편은 핑계였다.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명절이 오면, 대부분의 집처럼 우리 집도 제사를 지냈다. 새벽 일찍 깨어 더부룩한 배를 문지르며, 얼른 잠 깨라는 다그침에 겨우 머리를 감고 할아버지를 맞이하곤 했다. 멍하니 TV를 보다 음식을 나르고, 다시 TV를 보다가 절을 하곤 했다. 어릴 적엔 절을 잘한다는 칭찬이 좋아 엄숙한 마음가짐으로 무릎을 꿇고 양손을 포갰다. 이제는 왜 조상님들께 계속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 의미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도. 언젠가 아빠는 내가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조상님들 덕이라 했다. 분통이 터졌다. 나는 조상님들의 덕이나 탓으로 규정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추석엔 절을 하지 않기로 했다. 소설 데미안 속 싱클레어가 알을 깨어 나가듯 조상님이란 껍데기를 하나 벗는다. 여전히 수많은 껍데기들이 나를 감싸고 있다. 그것들을 모두 벗었을 때, 날개를 퍼덕이는 새가 있을지, 아니면 빈 공간만 있을지는 그때 가보면 알게 되겠지.


엄마에게 명절은 힘겨워보였다. 전날 아침부터 나물을 다듬고, 문어를 데치고, 소고기를 재웠다. 당일 아침엔 일찍 일어나 생선을 굽는다. 누구는 해변에 누워 햇빛을 받으며 칵테일을 마실 때(아, 아니지. 우리 집엔 그런 여유가 없었으니), 하다못해 동네 목욕탕이라도 가서 몸을 담그는 동안, 왜 우리 가족은 더 고생을 해야 했을까.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제사를 지내든 말든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던 아빠의 월급은 늘 제자리였다. 엄마의 망상 증세가 심해질 때면, 명절은 언제나 더 위험했다. 그건 내가 고향을 찾지 않는 두 번째 이유다. 엄마는 아빠와 나에게 “이제 곧 진짜 아들과 남편이 돌아와야 하니, 얼른 집을 나가달라”라고 했다. 내가 집에서 자는 것을 싫어했고 윗집에서 독가스를 뿌린다고 테이프로 집을 도배했다. 어느 날, 아빠는 엄마를 강제로 입원시켰다. 하지만 엄마는 또렷하게 말했고, 일상생활도 가능했다. 의사와 친척들은 결국 엄마를 퇴원시켰다. 그 일로 아빠는 멀쩡한 사람을 강제로 입원시킨 ‘정신병자’가 되었다. 어느 날, ‘왜 독가스를 계속 마셔야 하느냐’며 분노가 폭발한 엄마는 망치를 들고나가, 옆집과 윗집의 현관문을 몇 차례 내리쳤다.



공포에 질린 이웃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CCTV에는 분이 풀리지 않은 채, 망치를 들고 배회하는 엄마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챈 사회복지사가 경찰에 입원을 요청했다. 경찰은 껄끄러운 일에 휘말리길 꺼렸지만, 복지사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엄마를 경찰차에 태웠다. 엄마는 약을 먹으며, 비슷한 환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냈다. 하지만 우울증이 도지면서 걷지도 못할 만큼 쇠약해져 갔다. 아빠는 치료 여부와 상관없이 엄마를 퇴원시키고 싶어 했다. 퇴원한 엄마의 머릿속엔 망상이 걷히는 대신 깊은 우울이 자리를 잡았다. 살이 찌고 있다며 이제는 아빠 말고는 누구 앞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본가에 갈 수 없다. 엄마가 퇴원한 뒤, 집에서 차리던 제사는 사라졌다.


엄마의 망상 증세가 나타난 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다. 그때는 병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단지 성격이 점점 괴팍해지는구나, 그 정도로만 여겼다. 고등학교에 들어서야 비로소 병이 있음을 짐작했고, 그것이 조현병에 가까운 망상 장애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으며, 조금씩 관심이 생겼다. 정신 질환에 대해서는 환자뿐 아니라 가족 또한 주요한 보살핌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정신 질환자 본인도 괴롭겠지만, 증세에 따라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는 결국 가족의 몫으로 돌아온다. 연휴 동안 『남색 시각의 너희들은』이라는 일본 책을 읽었다. 일본에서는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법 제도도 점차 정비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움직임이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공개되었고, 김예지 의원이 정신건강증진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며 국가의 개입을 강화하고자 했다.


병은 흔하다. 다만 정신질환의 경우, 가족은 병에 맞서 연합할 수 없다. 환자의 시선에서 모든 타인은 — 가족까지 포함해 — 자신을 감시하고 독가스를 흘려 살해하려는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신 질환자의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는 실제 환자가 급격히 많아진 것이 아니라, 치료와 진단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탓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우주 전파와 독가스로 가득 찬 집이, 이 세상에서 조금씩 줄어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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