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는 무게를 품고 빛난다.
야구장의 다이아몬드를 바라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 사각형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는 무게가 있다. 선수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포지션에서 져야 하는 책임의 무게.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 무게가 클수록, 선수는 더 빛이 난다.
책임이라는 낯선 무게
처음 책임이라는 것을 실감한 건 고등학교 야구부 주장이 되었을 때였다. 그 전까지는 내 실력만 챙기면 됐다. 내가 잘 치고, 내가 실수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주장이 되고 나니 달랐다. 팀원들의 컨디션을 살펴야 했고, 팀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고, 때로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처음에는 그 무게가 버거웠다. 왜 내가 이런 걸 다 해야 하지? 그냥 야구만 하면 안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 무게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의무에서 의미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의 월급을 챙겨야 하고, 고객들에게 약속을 지켜야 하고, 가족들을 책임져야 했다.
어떤 날은 그 모든 게 의무처럼 느껴져서 숨이 막혔다. 도망치고 싶었고,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책임감이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짐이 아니라 힘으로, 부담이 아니라 존재 이유로.
언제부터였을까. 아, 그때였다. 한 직원이 말했다.
"대표님 덕분에 제가 꿈을 이룰 수 있었어요."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지고 있는 이 무게는 그냥 무게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연결된 의미라는 걸.
네가 지키는 위치가 있어
레슨을 하다 보면 책임을 회피하려는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실수하면 남 탓을 하고, 어려운 상황이 오면 뒤로 빠지려고 한다.
한 아이가 있었다. 팀에서 중요한 포지션을 맡았는데, 프레셔를 견디지 못하겠다며 자꾸 다른 자리로 바꿔달라고 했다.
"왜 꼭 제가 해야 해요? 다른 애들이 하면 안 돼요?"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지키는 위치가 있어. 그 자리는 너만이 할 수 있는 거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 그 자리에서 버티게 했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천천히 해도 된다고 말하면서.
몇 달 후, 그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이제 알겠어요. 제 자리가 왜 중요한지."
그 아이의 눈에서 자긍심이 보였다.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포지션의 의미
야구에서 각 포지션은 서로 다른 책임을 진다. 1루수는 1루를 지키고, 포수는 홈플레이트를 지키고, 투수는 마운드를 지킨다.
누구 하나 덜 중요한 사람은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야 팀이 제대로 돌아간다.
인생도 그렇다. 우리 각자에게는 지켜야 할 자리가 있다. 가정에서의 역할, 직장에서의 역할, 사회에서의 역할.
그 역할을 회피하면 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게 된다.
무너지고 싶었던 그 날
몇 년 전, 정말 힘든 시기가 있었다. 사업이 어려워졌고,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졌다.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았고, 모든 사람들을 실망시킨 것 같았다.
그날 밤,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으면서 생각했다. 이제 그만 포기하자. 모든 걸 내려놓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자.
하지만 아침이 오면서 깨달았다. 내가 포기하면 누가 이 상황을 해결하지? 내가 도망가면 누가 직원들을 책임지지? 내가 무너지면 누가 가족들을 지키지?
그 생각이 나를 다시 일으켰다. 책임감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
내가 해내야만 하는 이유
그때 깨달았다. 책임감의 진짜 의미를.
책임은 남이 나에게 지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이 자리에 있기로 한 것이고, 내가 이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 속에는 '내가 해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 이유를 발견하는 순간, 책임의 무게는 부담이 아니라 자긍심이 된다.
다이아몬드의 빛깔
야구장의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안에서 선수들이 각자의 책임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수는 마운드에서 최선을 다하고, 타자는 타석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수비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 모든 노력들이 모여서 아름다운 경기를 만든다.
인생의 다이아몬드도 마찬가지다. 내가 내 자리에서 책임을 다할 때, 그 자리가 빛이 난다. 그리고 그 빛이 모여서 아름다운 삶을 만든다.
책임은 관계의 다른 이름
생각해보니 책임이라는 것은 결국 관계의 다른 이름이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져야 하는 것.
가족에 대한 책임, 직원들에 대한 책임, 학생들에 대한 책임. 모두 사랑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사랑이 있으면 책임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리고 그 책임을 기꺼이 질 때, 사랑은 더 깊어진다.
무게를 견디는 법
책임의 무게를 견디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그 무게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내가 여기 있는지, 내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를 아는 것.
그 의미를 알면 무게는 견딜 만해진다. 아니, 견딜 만한 것이 아니라 기꺼이 질 수 있는 것이 된다.
성장하는 책임감
나이가 들면서 책임의 모습도 바뀐다. 젊을 때는 주로 내 앞날에 대한 책임이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책임도 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자랑스럽다. 누군가가 나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책임감이 주는 자유
역설적이지만, 책임감이 클수록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지니까 흔들리지 않는다. 내 존재 이유가 분명해지니까 불안하지 않다.
책임을 회피하려고 할 때는 오히려 더 불안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왜 여기 있는지가 불분명했다.
하지만 책임을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할 일이 많아도, 힘들어도, 적어도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있으니까.
나를 증명하는 방식
책임은 나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다. 말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책임을 지는 것은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인지, 얼마나 의지할 만한 사람인지, 얼마나 성숙한 사람인지는 내가 지는 책임의 무게로 증명된다.
그리고 그 증명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다이아몬드 속에서
오늘도 나는 나만의 다이아몬드 안에 서 있다. 내가 지켜야 할 포지션에서, 내가 져야 할 책임을 지고.
때로는 그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무게 덕분에 나는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지고, 더 빛이 난다.
책임은 짐이 아니다.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고,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고, 나를 빛나게 하는 다이아몬드다.
그리고 그 다이아몬드 안에서,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나를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다이아몬드. 그 무게와 빛깔을 품고, 오늘도 나는 살아간다.
지금 내가 감당하고 있는 책임은 무엇인가요?
그 책임은 나를 짓누르고 있나요, 아니면 나를 증명하고 있나요?
책임을 피하고 싶은 날, 나는 무엇을 떠올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