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함께 달리는 주자들, 외롭지 않은 그라운드」

by 윤숨

오랫동안 나는 혼자 달렸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오직 내 힘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했다. 그게 강함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성숙함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아무리 멀리 가도, 혼자서는 결승선에 닿을 수 없다는 걸.

외로운 질주의 시작

"나 혼자 할 수 있어."

언제부터인가 이 말이 입버릇이 되었다. 누군가 도움을 제안하면 정중히 거절했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혼자 끙끙 앓았다.

혼자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런 마음들이 나를 점점 고립시켰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복잡해지고,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혼자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혼자 달렸다. 숨이 차도, 다리가 아파도, 방향을 잃어도.

야구장에서 배운 진실

야구를 보면서 깨달은 게 있다. 아무리 빠른 주자라도 혼자서는 득점할 수 없다는 것.

1루에 나간 주자가 홈으로 돌아오려면, 다음 타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안타를 쳐서 주자를 진루시키거나, 희생타를 쳐서 주자를 불러들이거나. 어떤 방식이든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주자가 베이스를 돌 때, 벤치에서는 응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갈 수 있어!" "조심해!" "슬라이딩!"

그 목소리들이 주자에게는 날개가 된다. 혼자 달리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함께 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득점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팀이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다.

나를 울린 그 한마디

몇 년 전,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사업이 어려워졌고, 가정에도 문제가 생겼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던 때였다.

그때 한 친구가 말했다.

"너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하지 마. 나도 있잖아."

별것 아닌 말 같았지만, 그 순간 뭔가가 무너졌다. 그동안 꾹꾹 눌러담고 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나 혼자 아니구나.

그 깨달음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연결의 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혼자서는 살 수 없게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 진실을 외면해왔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 누군가와 마음이 통한다는 것, 내 감정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경험들이 자존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몰랐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말했다. "인간은 무조건적인 긍정적 관심을 받을 때 성장한다"고. 즉, 누군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이해해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존감도 결국 관계 속에서 자란다.

캠프에서 함께 성장한 아이들

야구캠프에서 본 장면이 기억난다. 처음에는 혼자서만 연습하려고 했던 한 아이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구석에서 혼자 공을 던지고 받고를 반복했다.

"왜 혼자 연습해?"라고 물어보니, "남들한테 폐 끼치기 싫어서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다른 아이 하나가 먼저 다가가서 "같이 하자"고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함께 연습하기 시작한 두 아이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의 실수를 감싸주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쉬워했다.

몇 주 후, 그 아이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자신감도 생겼고, 실력도 늘었고, 무엇보다 야구가 즐거워졌다.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변화였다.

함께의 불편함을 감수하기

물론 함께한다는 건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내 페이스대로 할 수 없고, 상대방을 배려해야 하고, 때로는 내 욕구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할 때, 우리는 더 인간다워진다.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을, 혼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독립과 고립은 다르다. 독립은 자신의 힘으로 서는 것이지만, 고립은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차단하는 것이다.

진정한 독립은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혼자서도 괜찮지만, 함께할 수도 있는 능력. 그것이 진짜 성숙함이다.

응원받는 경험

최근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두렵고 불안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응원해주었다.

"할 수 있어." "우리가 있잖아." "실패해도 괜찮아."

그 말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혼자였다면 시작도 못했을 일을, 함께라는 믿음으로 해낼 수 있었다.

야구에서 주자가 베이스를 돌 때, 코치가 손을 저으며 신호를 보낸다. "계속 달려!", "멈춰!", "슬라이딩!" 그 신호들이 주자에게는 방향이 된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누군가의 응원이 방향이 되고, 때로는 누군가의 격려가 용기가 된다.

내가 누군가의 응원이 될 때

응원받는 것만큼 중요한 게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든든한 지지자가 될 때, 나 역시 더 단단해진다.

캠프에서 만난 한 아이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나는 그 아이 옆에서 계속 말했다.

"괜찮아, 천천히 해봐." "실수해도 돼." "나는 네가 할 수 있다고 믿어."

그 아이가 다시 일어났을 때의 기쁨은 내 것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성장에 함께했다는 기쁨,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뿌듯함.

그런 경험들이 나의 자존감도 키워주었다.

서로를 살리는 관계

좋은 관계는 서로를 살린다. 한 사람의 성장이 다른 사람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한 사람의 기쁨이 다른 사람의 기쁨이 된다.

야구에서 한 선수가 안타를 치면, 다른 선수가 득점한다. 한 선수의 성공이 팀 전체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다.

인생도 그럴 수 있다. 내 성공이 다른 사람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외롭지 않은 그라운드

지금의 내 그라운드는 외롭지 않다. 함께 뛰는 사람들이 있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완벽한 관계는 아니다. 때로는 의견이 다르고, 때로는 오해가 생기고, 때로는 거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달리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연결의 순간들

어떤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와 마음이 통하는 순간,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함,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아픔도 함께하면 견딜 수 있게 된다.

최근에 한 친구가 말했다.

"너와 이야기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걸 느꼈다.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함께 달릴 때, 우리는 더 멀리 간다

혼자서도 달릴 수 있다. 하지만 함께 달릴 때, 우리는 더 멀리 갈 수 있다. 더 오래 버틸 수 있고, 더 큰 목표에 도전할 수 있다.

자존감도 마찬가지다. 나 혼자의 힘으로도 어느 정도는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단단한 자존감은 관계 속에서 자란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과의 연결 속에서 완성된다.

야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는 주자가 홈에 들어올 때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다. 혼자 달려왔지만, 결승선에서는 혼자가 아니다. 함께 기뻐할 사람들이 있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각자의 길을 걸어가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함께할 사람들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혼자가 아니다. 지금은 외롭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당신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과 함께 달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때도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약함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자.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말자.

우리는 결국, 함께 달려야 도달할 수 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목표들을, 함께라면 이룰 수 있다.

오늘도 누군가 당신과 함께 달리고 있다. 그리고 당신도 누군가와 함께 달리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일이다.


잠시 멈춤, 홈 플레이트에서 나에게 건네는 질문

나는 지금 누구와 함께 달리고 있나요?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요?

진짜 연결은 언제 마지막으로 느껴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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