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해묵은 영어 상처와 마주하기
"엄마, 'butterfly'가 뭐예요?"
다섯 살 수빈이가 영어 그림책을 들고 와 물었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나비'라는 것은 알지만, 정확한 발음이 기억나지 않았거든요.
"어... 그게... 나비야."
"영어로는 어떻게 말해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아이 앞에서 영어를 못한다는 것을 드러내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엄마도... 잘 모르겠네. 나중에 찾아볼게."
수빈이는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섰고, 저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좋은 엄마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지 모릅니다.
영어유치원 상담 날. 다른 엄마들이 원장님과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주눅이 들었던 순간. 학부모 모임에서 "우리 애는 이미 챕터북을 읽어요"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던 기억. 아이의 작은 영어 실수에 자신도 모르게 예민하게 반응하고는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며 후회했던 날들.
이런 순간마다 우리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입니다.
불안: "내가 영어를 못해서 아이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부끄러움: "다른 엄마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죄책감: "좋은 엄마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데..."
조급함: "빨리 뭐라도 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왜 우리는 유독 영어 앞에서 이렇게 작아질까요?
잠시 눈을 감고 과거로 돌아가 봅시다.
중학교 영어 시간. 민지는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손을 들었습니다.
"I... I goed to the... park yesterday."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마저 한숨을 쉬며 말했죠.
"민지야, 'goed'가 아니라 'went'야. 이런 기본도 모르니?"
그날 이후 민지는 영어 시간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손을 들 용기는 다시 나지 않았죠.
30년이 지난 지금, 민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영어로 말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혹시 아이도 자신처럼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놀림을 받지 않을까...
혹은 중요한 영어 시험을 망쳐 크게 낙담했거나, 영어 점수 때문에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 아픈 기억을 가진 분들도 계실 겁니다. 대학 입시에서 영어 때문에 원하는 학교에 가지 못했던 좌절, 취업 면접에서 영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해 떨어졌던 상처...
은정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학 때 교환학생을 가고 싶었는데, 토익 점수가 모자라서 포기했어요. 그때 '나는 영어와는 인연이 없나 보다' 생각했죠. 근데 이제 와서 아이 영어 교육을 하려니 그때의 무력감이 다시 올라와요."
이런 과거의 상처들은 단순히 '옛날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박힌 작은 가시처럼, 영어와 관련된 상황이 올 때마다 우리를 찌릅니다.
그리고 이 가시는 우리가 아이의 영어 교육을 바라보는 렌즈가 됩니다. 불안하고, 조급하고, 때로는 과도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숨겨진 원인이 되는 거죠.
"영어 잘하는 엄마가 좋은 엄마"
언제부터인가 이런 공식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지현 씨는 아이가 다니는 영어유치원 학부모 모임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엄마가 원어민 선생님과 20분 넘게 유창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죠.
"집에 와서 울었어요.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될까... 우리 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하지만 잠깐, 여기서 질문 하나 던져볼게요.
정말 엄마의 영어 실력이 아이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결정할까요? 영어를 못하면 정말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까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좋은 엄마가 되는 데 필요한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닙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는 따뜻한 눈빛,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는 든든한 믿음. 이런 것들이죠.
하지만 우리는 왜 자꾸 영어 실력과 엄마의 가치를 연결 지을까요?
사회적 압박: "글로벌 시대에 영어는 필수"라는 메시지
비교 문화: SNS에 올라오는 '영어 영재' 이야기들
완벽주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
보상 심리: 내가 못 이룬 것을 아이에게는 꼭 주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들이 뒤엉켜 "영어 못하는 나 = 부족한 엄마"라는 왜곡된 공식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당신의 가치는 영어 점수로 매길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잠시 조용한 시간을 가져보세요.
편안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영어 때문에 가장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세요.
교실 한구석에서 작아져 있던 그 아이가 보이나요? 시험지를 받아들고 눈물을 참던 그 아이가 보이나요? "난 영어는 안 돼"라고 포기하던 그 아이가 보이나요?
그 아이는 지금도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와 관련된 상황이 올 때마다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는 또 실패할 거야." "너는 영어를 못하잖아." "숨고 싶어. 도망가고 싶어."
이 목소리가 들릴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게 됩니다.
아이가 영어 단어를 틀렸을 때 과도하게 걱정하는 것도, 아이가 영어를 싫어한다고 했을 때 극도로 불안해하는 것도, 다른 아이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조급해하는 것도,
모두 우리 안의 '상처받은 아이'가 보내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내가 그 아이에게 어떤 따뜻한 말을 건네주고 싶은지, 가만히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세요.
"괜찮아. 너는 잘못하지 않았어." "영어를 못해도 너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야."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시작하면 돼."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그 작은 만남이 큰 위로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진 분들이 계실 겁니다. 잊고 있던 상처가 다시 아프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이런 감정과 경험은 결코 당신의 나약함이나 부족함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온 교육 환경, 사회적 분위기,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당신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실제로 제가 만난 수많은 엄마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어요..." "다른 엄마들은 다 자신 있어 보여서..." "제가 너무 예민한가 싶었는데..."
아닙니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에요.
영어 앞에서 작아지는 마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더 잘해주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는 답답한 마음. 이 모든 것이 엄마들의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용기를 낸 당신. 그것만으로도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보는 것. 그것이 치유의 첫걸음이니까요.
오늘 우리는 긴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영어 앞에서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뿌리에 있는 과거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영어 실력과 엄마의 가치를 분리해서 생각해보고,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를 만나보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마음이 먼저입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대물림됩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처럼, 엄마의 마음이 먼저 안정되고 치유될 때, 비로소 아이와의 건강한 영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영어 트라우마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나는 영어를 못하는 엄마"에서 "나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엄마"로.
"영어가 두려운 엄마"에서 "영어를 새롭게 만나는 엄마"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마음의 뿌리는 자기 이해와 자기 수용에서 시작됩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렇게 인식한 엄마의 감정이 어떻게 아이에게 전달되는지, '감정 전이'라는 심리학적 현상을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당신이 들여다본 내면의 상처.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용기. 그것이 곧 아이를 위한 가장 큰 사랑의 시작입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입니다. 영어 점수와 상관없이, 당신은 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 진실을 가슴에 품고, 함께 다음 장으로 나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