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이성 사이
"몇 층이세요?"
친절하게 물었다. 대답이 없다. 이어폰을 낀 채 핸드폰만 보고 있다.
다시 한 번. "몇 층 가세요?"
그제야 쳐다본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15층을 가리킨다.
순간 열이 확 올라왔다.
'말이 없냐?'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나?'
15층 버튼을 세게 눌렀다. 꾹.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10초.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전쟁터가 됐다.
'한 마디 해줄까?' '무시하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왜 이래?'
15층. 그가 내렸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깨달았다. 고작 10초 만에 나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 때문에.
세네카가 떠올랐다.
"분노는 짧은 광기다."
정말 그랬다. 10초의 광기.
"이런 글이나 쓰고 월급 받나요?"
아침에 확인한 내 글의 댓글이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곧 분노가 치밀었다.
'뭘 알고 그러는 거야?' '너는 뭐 그렇게 대단해서?'
답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 글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안 읽으시면 됩니다. 굳이 이런 댓글을..."
쓰다가 지웠다. 다시 썼다.
"건설적인 비판은 환영하지만 이런 인신공격은..."
또 지웠다.
30분을 그렇게 보냈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결국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그 댓글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에픽테토스를 다시 읽었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
한 줄의 댓글. 그게 전부다. 내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냥 글자의 나열일 뿐.
"깜빡이도 안 켜고 끼어들기냐!"
경적을 빵빵 울렸다. 창문을 내리고 소리치고 싶었다.
'운전 이따위로 하면서...' '면허는 어떻게 딴 거야?'
신호등에 걸렸다. 옆에 나란히 섰다. 그 운전자를 노려봤다.
중년 여성이었다. 피곤해 보였다.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순간 미안해졌다.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 도로 위에서만 이렇게 공격적이 되는 이유는 뭘까?
차 안은 나만의 공간이다. 익명성의 갑옷을 입는다. 그래서 더 쉽게 분노를 표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이유로,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정도로 화내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부적절한 때에, 부적절한 이유로, 부적절한 정도로 화를 냈다.
"그 접시 좀 치워!"
엄마의 잔소리. 피곤한 퇴근 후 듣기 싫은 소리다.
"알았어요. 좀 이따 할게요."
"맨날 이따, 이따! 지금 당장 해!"
갑자기 폭발했다.
"아, 좀 가만히 놔두면 안 돼요?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엄마도 소리쳤다.
"알아서 하는 게 없으니까 그러지!"
방문을 쾅 닫고 들어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분하고 억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도 힘들 텐데. 나를 위해 저녁 준비하고 기다렸을 텐데.
가족이라서 더 쉽게 화낸다. 편하니까 더 함부로 한다. 사랑하니까 더 상처 준다.
모순이다.
새벽 3시. 또 잠이 안 온다.
오늘 하루 화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아침: 지하철에서 발 밟은 사람에게
점심: 주문 틀린 카페 직원에게
오후: 일 제대로 못한 후배에게
저녁: 전화 늦게 받은 친구에게
밤: 잔소리하는 엄마에게
하루에 다섯 번.
그 순간들을 돌이켜보니 대부분 별것 아닌 일이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아파테이아'를 추구했다. 감정의 동요 없는 평정심.
하지만 나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반응한다. 마치 건드리면 터지는 풍선처럼.
심리 상담사가 권했다. 분노 일기를 써보라고.
월요일
상황: 회의 시간에 늦은 김 대리
분노 수준: 7/10
내 생각: '시간 약속도 못 지키면서'
실제 상황: 프린터 고장으로 자료 출력이 늦어짐
화요일
상황: 내 아이디어를 비판한 팀장
분노 수준: 9/10
내 생각: '내가 무시당했다'
실제 상황: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려던 조언
일주일을 기록하고 보니 패턴이 보였다.
피곤할 때 더 예민하다. 배고플 때 더 짜증 낸다. 스트레스받을 때 더 공격적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분노는 오해에서 비롯됐다.
분노 관리 책에서 읽은 방법을 시도했다.
화가 날 때 심호흡 10번.
처음엔 우습게 생각했다. 숨 쉬는 게 뭐 대단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달랐다.
오늘 오후, 거래처 담당자의 무례한 메일을 받았다.
'이 사람이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야?'
열이 올라왔다. 당장 따지는 메일을 쓰려던 순간.
심호흡.
하나, 둘, 셋...
열 번을 세고 나니 조금 진정됐다.
다시 메일을 읽어봤다. 어? 그렇게 무례하지 않다. 그냥 바쁜 사람의 짧은 메일이었다.
10초의 마법이었다.
플라톤이 말했다.
"현명한 사람은 말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한다."
호흡은 그 '두 번 생각'의 시간을 준다.
왜 이렇게 화를 잘 낼까?
새벽에 혼자 생각해봤다.
두려움? 인정받지 못할까 봐. 열등감?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외로움? 이해받지 못한다는.
분노는 가면이었다. 진짜 감정을 숨기는.
니체가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는 매일 싸우고 있었다. 세상과, 타인과, 나 자신과.
그리고 어느새 내가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일부터 '자비 실험'을 하기로 했다.
화가 날 때 상대방의 입장 생각하기
비난하기 전에 이해하려 노력하기
나 자신에게도 관대해지기
작은 시작이지만 변화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분노는 불이다. 적절히 쓰면 따뜻함이 되지만, 통제하지 못하면 모든 걸 태운다.
나는 이제 불을 다루는 법을 배우려 한다.
화를 내지 않는 게 아니라, 화를 내는 법을 배우려 한다.
지혜롭게, 자비롭게.
그것이 진정한 강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