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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Jan 24. 2023

북적북적한 설 명절이 그리운...

외노자의 설 명절 나기

보통 나 같은 중년의 여자들이 명절 쇤 이야기를 한다면, 명절 증후군이라거나 얼마나 편하게 명절을 쇠었는지이거나, 또는 여행을 가거나 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해외에서 살고 있는 외노자인지라 명절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한국에 살 때에도 결혼하고 명절 한 두 번 지낸 후 싱가포르에서 바로 직장을 구했기 때문에 결혼 후 며느리로의 명절보단 딸로 지낸 명절이 훨씬 더 길고 기억에 남는다. 사실 결혼 후에도 음식은 대부분 시어머니가 다 준비해 놓으셨고, 우리는 가서 아주 소소한 뒤치다꺼리만 했다. 음식을 많이 차리는 집도 아니고 또 중간중간 피자 같은 것도 시켜 먹고 낮잠도 자고 그래서 평소 주말과 다르지 않은 명절을 보냈던 기억이 남는다. 반대로 결혼 전 엄마 아빠의 그늘 아래에서 명절을 지낼 땐 항상 북적북적했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대갓집 종손이셨기 때문에, 명절마다 작은할아버지들과 그 집 아들들 (나에겐 오촌 당숙들)까지 우리 집으로 모두 인사를 하러 오셨다. 덕분에 난 세뱃돈을 쏠쏠하게 챙길 수 있어서 명절은 나에게 일 년 치 용돈 주머니를 채우는 날이었다. 반면 우리 엄만 셋째 며느리였지만 너무나 효자인 우리 아빠 덕분에 젤 먼저 할아버지 댁에 가서 장보기부터 도맡아서 하곤 했다. 언젠가 어린 마음에 할머니에게 왜 우리 엄마만 일 시키냐고 대들었다가 엄마에게 방으로 끌려 들어간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 입장에선 당황스러우셨겠지... 그래도 지금까지 두고두고 나에게 그 얘길 하시는 거 보면 은근히 기분 좋으셨나 보다. 내 앞에선 한 번도 명절을 힘들어하시거나 시가 흉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엄마가 속으론 얼마나 힘드셨을지 결혼 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모두 돌아가신 후엔 큰아버지댁에서 차례를 지내게 되었는데 그것 역시 좋았다. 이제 중학생이 된 우리들은 밤까지 늦게 나가서 놀 수 있게 되면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명절에 받은 용돈으로 온갖 불량식품을 사 먹고, 부모님에 대한 불만사항들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거리낌 없이 나누곤 했다. 그렇다, 명절은 이렇게 먹고, 놀고, 용돈 받는 신나는 날들이었다.

벌써 싱가포르에서 15년이 넘게 명절을 지내며, 아직도 명절을 신나게 보내고 싶은 욕구는 여전하다. 하지만 음식이랑 모든 명절 준비도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 어린 시절과는 다른 점. 남들은 해외에 산다고 하면 명절과 경조사를 안 챙겨도 되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난 한 번도 명절 음식 준비를 거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명절의 신나는 분위기를 즐기려면 음식이랑 손님을 빼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몸이 조금 편하자고 그걸 포기할 수 없으니 이게 바로 노스탤지어의 힘이랄까?


올해에도 전을 부치고, 고기를 재우고, 나물을 무치고, 만두를 빚었다. 참, 올해에는 마침 김치도 똑 떨어져서 김치도 담갔네. 매일 조금씩 하다 보니, 부엌에서 내내 머무르긴 했어도 힘든 줄 모르고 남편과 함께 열심히 쓸고 굽고 부치고 설거지를 했다.  명절에 함께 해 준, 싱가포르에 혼자 사는 친구들, 외국인 친구 가족들 등등, 가족을 대신하여 함께 명절을 보내 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소중하다. 함께 모여서 음식을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고 시끌시끌해야 명절을 쇤 기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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