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火
여전히 머릿속 어딘가에,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내가 있다. 결혼하면 더더욱 멀어질지 모를 그 모습을 뭣하러 자꾸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걸 버리고 그 모습이 되기 위해 떠날 용기도 없으면서. 다른 모두를 실망시키고 나 하나를 만족시킬 자신 따위, 조금도 없으면서.
그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어. 엄마를 미워하는 것처럼. 사랑하고 그리고 지겨워하고. 갑갑해하고 그리고 원하고. 하지만 따라붙는 모든 추가적인 관계들은 너무 버겁지 않을까. 나는 정말 인형이 되어버리는 걸까.
드레스를 입은 거울 속의 나. 그냥 마네킹.
머리 하나 꽂아 놓은 장식품. 예쁜가? 뭔가?
혼란스러웠다. 불편하고. 그럴싸하지만 텅 빈 것 같은.
흥분이 되는 걸까, 신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어지러운 걸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에게 보여주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런 날 우스꽝스럽다고 느끼는 걸까.
아름다운 신부로 남들에게 기억되려고 갖은 애를 써야 하는 걸까.
그게, 나인가?
달라지려고 발버둥쳐도, 결국엔 다 같은 흰 드레스일뿐이지.
나는 또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걸거야.
자고 나면 괜찮아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