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조약돌 둘 17화

흔들다리 위에서만 사랑은 존재해

화 火

by 하이디 준

결혼은 역시… 참 다르다. 기대한 것과도, 기대하지 않은 것과도. 늘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완성형으로 착각해 버리고 말지만, 이렇게 종종, 갑자기 뒤통수를 맞듯, 현실에 노출된다. 꽤 면역이 생겼다고 자부했는데, 글을 쓰는 법, 아니 고백을 하는 일은 오히려 서툴러졌다. 나는 말을 고르고, 또 삼킨다. 게을리 해온 운동 같달까. 마음의 근육이 움찔거린다. 낯설지 않지만, 한동안 잊어온 고통.


빼곡한 앞 페이지들을 보고싶지 않은 듯 겨우 읽어내보니, 모든 글의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항상 외로울 때면 종이와 펜의 곁으로 돌아온다. 아마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제법 배신했었나보다. 하하. 배신이라는 단어는 참 우습지. 그것도 결국 혼자놀음의 결과. 내가 만들어놓은 환상의 인물과 현실의 인간과의 불일치.


믿음이란 그런 것이다. 허구에 바탕한 것. 환상의 다리 위의 누각.

그런 것이 어느날 우수수, 무너진다한들 놀라거나 분노해서는 안 된다.

그건 어디까지나 꿈이었으니까. 원래 그런 성질인 것을 나무라서는 안 되니까.


그래도 실은, 이건 다만 하루일뿐이다. 순간일뿐이다. 이 종이에 남겨지지 않은 수많은 기화된 과거들은 실은 좋았다. 저쪽 페이지의 날짜와 지금 이 페이지의 날짜 사이의 많은 날들, 기록되지 않은 날들은 실은 외롭지 않았던 거다. 즐겁고 애처롭도록 신이 나서, 종이와 펜 따위 잊어버려도 좋을만큼의 시간들이었던거다.


그러니까, 그 정도면 튼튼한 거지. 환상 위에 지어진 위태로운 듯한 집은.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흔들리는 정도인 거잖아.


나는 많은 것들을 해볼 수 있다. 하고 있다. 어쩌면 혼자라면 힘들었을 일들. 전혀 시도도 하지 않을 일들.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까지도.


나는 그 어떤 타인에게도 가 닿지 못한다. 누군가가 원하는 만큼 타인에게 다가가고자 한다면, 그는 타인을 죽여야만 한다. 타인이 차지한 그 마음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선 그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공존을 위해, 우리는 환상의 다리를 놓는다. 허공에서 우리는 가끔 만나고 외로움을 잠시 잊는다. 허공 위에 지어진, 환상의 다리 위에서, 우리의 부질없고 애틋한 생을 나누는 척 해본다.


그건 어쩌면 실은, 아주, 아주 낭만적이다.

견우와 직녀의 다리처럼. 아주 운명적이고, 아주 위태롭고, 아주 예술적이다.


그러니까 나는 나아가야만 한다. 매일, 매일. 죽음이 나를 깨울 그 날까지만.

꿈을 꾸고, 다리를 놓고, 낭떠러지를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내 발 아래가 허공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유일한 사실을, 잊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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