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이미 연애10년을 통해서 애인에 대해서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했고, 실제적으로 결혼생활에 들어와보니 내가 새롭게 본 모습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종종 다툼은 있었지만 연애 10년차의 짬이 있어서일까. 그 다툼은 길게 가지는 않았었다.
연애때부터 우리는 그렇게 싸움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둘 다 결국은 헤어질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잠정적으로 동의하고 있었고 따라서 싸움으로 굳이 힘을 빼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서로에게 기분이 상한 일이 있으면 돌려 말하기보다는 직설적이지만 감정은 덜어내고 말하는 것이 익숙했다.
"나, 오늘 이거 때문에 마음이 좀 상했어."
물론 대게 이런 발언을 하는건 애인쪽은 아니고 내 쪽에 가깝지만.
아무튼 이렇게 말을 시작하면 그 이유를 듣고 상대는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물론 납득이 늘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왜 그랬는지를 알고 기분이 상해하는 것과 이유를 모른채 그냥 기분이 상해있는 건 다르다.
때때로 자신의 의도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때가 있고 그럴 경우 우리는 망설임 없이 사과한다.
"미안해, 그러려고 그런건 아닌데 마음이 상했어?"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기분이 상했다는 상대도 더 할말은 없다. 이해가 안가는 행위였더라도 앞으로 조심하자고 얘기하면서 끝맺음을 하면 그냥 그날의 싸움은 끝.
100%의 확률로 이렇게 싸운다기보다는 90% 정도다. 가끔은 그렇게 사과를 해도 마음이 안 풀릴 때도 있지만 그것은 감정의 문제인 것이지, 그 사람 자체가 미워지지는 않는다.
다투는 일들은 이렇게 해결했고 사소한 생활습관들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얘기하고 상대는 인정하고 꾸려고 한다거나 둘만의 규칙을 만드는 식으로 해결해나갔다.
종종 신혼부부의 갈등의 씨앗이 된다는 양가 부모님들의 문제도 감사하게도 우리는 양가 모두 그렇게 크게 터치하지 않으셨다. 각각의 부모님께는 각자 연락하고 생신이나 어버이날, 명절때는 당연히 양가 모두 방문하는 식이었다.
그렇다보니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함께 모이는 자본으로 여행을 다니고, 늘 무언가를 함께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결혼생활이라는 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결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느껴질 정도였다. 다행히 우리는 서로에게 합이 잘 맞는 커플이었다.
내 나이 서른살, 남편 나이 서른 한살에 결혼을 했기에 결혼을 한 그 순간부터 열심히 즐겼던 것 같다. 주말마다 데이트를 하러 나가고, 분기에 한번씩은 여행을 다니고.
코로나 시국이 끝난 후에는 1년에 한번씩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행복한 생활을 지냈다.
물론, 종종 집이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던가 돈을 더 열심히 모아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것들이 우리에게 '필수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툭툭 넘겼다.
그렇게 결혼생활을 지속하던 3년차, 슬슬 주변에서 나보다 늦게 결혼한 친구들의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아이 계획.
원래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던 나였기에 아이도 낳지 않을 계획이었다. 아이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귀여운 존재지만, 그 생명이 태어난 순간부터 자립할때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은 너무나 막중한 일이었다.
게다가 결혼은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하면 이혼이라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아이를 낳는 일은 잘못 선택했다고 해서 무를 수 있는 차원의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걸 좋아하고, 회사 일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을 하면서 느끼는 자기효능감을 제대로 느끼는 나였기에 아이 돌보는 것도 잘할 자신이 없었다.
남편은 연애할때는 그래도 아이가 하나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종종 피력했지만, 나는 그 때마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얘기하며 안된다고 선을 그었었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느냐, 그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떡하냐,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간들을 온전히 투자해야 하는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라는 얘기였다.
나의 단호한 모습에 남편은 그러자 그럼 이라며 수긍했었고 둘만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결혼생활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내 나이는 계속해서 들어가고, 주변에서 친구들의 임신 소식이 들리고, 가족들도 종종 아이계획을 묻자 문득 불안해졌다.
사실 나는 지나가는 모든 아이들에게 인사를 할 정도로 아이를 좋아하는데, 과연 내가 내 아이 없이 사는 삶에 대해 나중에 아쉬워하지 않을까?
게다가 연애 10년, 결혼 3년차를 지나는 시점에도 늘 사랑스러운 남편을 닮은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남편에게 느끼는 사랑과는 사뭇 다른, 정말 이것이 '사랑'이구나 라는 감정을 아이를 낳으면 느낄 수 있다는데 그걸 느껴보지 못한채로 사는 건 괜찮을까?
그렇다고 이러한 이유만으로 아이를 낳자고 결정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망설이다간 내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 것도 맞았다. 만으로 35살이 노산의 기준이라는데 이제 거의 끝자락에 다다른 셈이다.
주변에서는 아이를 낳을 거면 한살이라도 어릴 때 낳는게 엄마도 아이도 고생을 덜 한다는 얘기도 들려왔고, 실제로 내가 보기에도 아이를 양육하는 건 체력전처럼 보여졌기에 맞다는 생각을 했다.
즉, 이제는 아이를 낳는 걸로 결정을 하든, 혹은 낳지 않는 걸로 결정을 하든.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남편과는 각자 조금 더 고민해보고 이야기를 해보자고 논의했고 내 고민은 깊어졌다. 책도 읽어보고 웨비나에도 참여를 해봤지만 결국 어디서도 뾰족한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