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은 작가의 소설 속 이야기는 늘 다음을 상상하게 한다.
이 책은 구독하고 있는 '책발전소 북클럽'의 2월 책이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은 매월 어떤 책이 나에게 올까?하는 기대심리가 생기게 되는 점이다. 2월의 책은 소설책이었기에 뭔가 훌훌 금방 읽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예은 작가의 작품인 <꿰맨 눈의 마을>은 3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각각의 이야기인듯 하지만 사실은 3편의 이야기가 모두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들이다.
꿰맨 눈의 마을
첫번째 이야기인 <꿰맨 눈의 마을>은 메인 스토리이자 주인공은 '이교'의 이야기다. 2066년 인류는 멸망하고 이후 역병(?) 아무튼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돌면서 인류의 생김새가 지금과는 많이 달라진다. 누군가는 눈이 3개이기도 하고 손이 7-8개이기도 하고 목 뒤에 입술이 나기도 하고 그런식으로 인류가 변형되게 된다. 그런 와중에 '타운'은 지금의 인류와 동일한 형태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이다. 이 곳에서는 그렇게 신체가 이상한 사람이 나오면 누구나 주저없이 신고를 하도록 되어 있고 신고된 사람은 곧 마을을 추방당하게 된다. 추방당할 사람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오직 독약이 들어있는 미트 파이(이것도 추방당할 사람을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뿐이다.
이교는 타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친구인 '램'의 목 뒤에 입술이 돋아나면서 램은 그대로 추방당하게 된다. 사실 이교의 등에도 눈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이교의 등 뒤 눈을 발견한 이교의 부모님은 의사인 아빠의 솜씨로 눈을 흉터처럼 만들어서 지금까지 감추고 살았던 것이다. 램이 쫓겨나자 이교는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고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낙하산을 타고 가다가 떨어진 람'을 만난다. '람'은 이교의 타운에서 보면 외지인이었고 '괴물'이었지만 실제로 만나본 '람'은 지금까지 이교가 배워온 괴물과는 달랐다. 오히려 람은 이교를 보며 '구인류'라고 칭하고 자신을 '신인류'라고 칭한다. 이교는 람과 함께 타운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등 뒤눈을 보이며 타운 밖으로 나가면서 <꿰맨 눈의 마을>은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 단편 소설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관점의 차이, 소수에서 다수로 넘어가는 그 순간이 크게 자리잡았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배척받았던 눈이 5개인, 손이 20개인, 귀가 3개인, 입술이 2개인 사람들이 다수가 되는 시점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을 계기로 사람들은 그런 다수를 '신인류'라고 칭했을 것이고. 이 소수와 다수의 문제는 현실과 맞닿아서 생각해보면 동성연애자일수도 있고, 트렌스젠더일수도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다수'인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신인류와 구인류. 진짜 생각의 차이로 누군가는 '괴물'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신인류'라고 보는 접근법도 굉장히 신선했다. 결국은 보는 사람이 어떤 시선으로 어떤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느냐의 차이이지 않을까 싶었다.
히노의 파이
히노의 파이는 두번째 이야기인데 앞서 나온 <꿰맨 눈의 마을>속 문지기인 백우의 이야기이다. 이교의 삼촌이자 타운을 지키는 문지기인 백우. 백우의 아버지도 문지기였고, 백우도 그런 아버지를 따라 문지기가 되었다. 백우의 아버지는 백우에게 문지기란 두 종류의 문지기가 있다고 얘기하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문지기가 될 것을 은연중에 강요하고 백우는 8살의 나이에 할아버지를 버리고 오는 아버지를 바라보던 그 날의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육받은대로 문지기 일을 수행하던 백우는 우연히 이방인인 히노를 만나게된다.
히노는 타운 태생은 아니지만 신체에 이상이 없다는 이유로 타운에서 자라는 것을 허락받기는 했으나 은연중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는 캐릭터다. 노파와 함게 마을 밖으로 추방당할 사람들이 먹을 파이를 만드는 일을 한다. 히누는 자신이 만들 파이에 독이 들어있다는 걸 알고 백우에게 사람들이 그 파이를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를 알려달라고 하고, 백우는 히누에게 사람들이 그 파이를 먹지 않았다고 거짓을 전해준다. 자신이 만든 것을 먹고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파이를 만드는 히누. 결국 히누의 몸에도 이상반응(?)이 생기게 되고 히누는 결국 타운 밖으로 자발적으로 나가게 된다.
백우는 떠나간 히누를 그리워하며 히누가 만들던 방법 그대로 파이를 만드는 것이 <히누의 파이>의 이야기이다. 백우는 어쩌면 무기력함 같은 것을 학습받지 않았을까?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고 그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방식이 옳다고, 더 이상 생각 하는 것을 멈춰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백우의 이야기는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램
세번째 이야기는 <램>인데 이교의 친구인 '램'의 이야기다. 램은 타운 속에서 늘 교육받던 대로 자랐으나 어느날 문득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긴것을 알게 되고 타운밖으로 매몰차게 내쫓긴다. 내쫓겨진 램은 백우에게 애원도 해보지만 결국 홀로 남겨졌다. 램은 남겨진 채로 파이를 먹고 죽음을 각오하지만 의외로 파이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램은 죽지 않았고 괴물들에게 자신이 뜯겨질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몇일이 지나도록 그 누구도 램을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램이 공격 당하고 있는 것은 배고픔과 목마름이었다. 가만히 그 자리에서 죽음을 각오하던 램은 일단 가보기로 하고 아픙로 나아가면서 물줄기도 만나게 되고 길을 잃은 경비행기를 보게 되고 구조를 기다리게 된다. 아마도 그 경비행기가 첫번째 이야기였던 <꿰맨 눈의 마을>의 람의 비행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해서 이 3개의 이야기는이어져있다.
아주 명확한 결말이 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했을 때 이야기는 희망적으로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람을 통해 타운 밖에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오히려 그들이 다수이니 램도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림의 모습 그대로를 반겨줄 사회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람과 함께 떠난 이교 역시 자신의 타운 외의 더 큰 세계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그 세계 안에서는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불안감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백우 역시 곧 히노를 찾아가지 않을까. 그리고 히노는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그를 위한 쿠키를 굽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뭔가 현실적이지 않으면서 현실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빛나는 모형들>이라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확연하게 정리가 된 것 같았다. 진짜로 조예은 작가의 이 <꿰맨 눈의 마을>은 빛나는 조형물 같은 소설이었다. 먹음직 스럽지만 실제로 먹을 수는 없는 것 같은 모형들처럼, 있음직해서 몰입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현실의 소설인 셈이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것이 '가상'의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가상'의 스토리를 몰입해서 읽는 내가 잘 이해가 안되었었는데 <빛나는 모형들>이라는 에세이를 통해서 그 이유를 어렴풋이라도 알게 된 것 같았다. 단 걸 좋아하지 않지만 베이킹을 하는 그 시간을 사랑하는 작가님의 동생처럼, 다 완성되고 나서 한 5초 정도 뿌듯한 순간을 위해 나노 블록을 만드는 작가님처럼. 나 역시 몰입해서 빠져들 그 순간을 위해서 긴 시간 투자해서 가상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전염병 아닌듯 전염병 같은 <꿰맨 눈의 마을>속 질병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겪은 코로나라는 전염병도 어찌보면 비슷한듯 비슷하지 않은 듯 닮아있었던 것 같다. 대구 신천지 사태를 겪으면서 보였던 일부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 물론 생존의 위협 앞에서 자신을 우선시 생각하는게 본능이니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이런 비슷한 일들은 게속 발생할텐데 여기서 다시 생기는다수-소수의 관계와 더불어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지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까지. 꽤나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된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