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한 달에 한 번, 봉사하고 있는 마을문고. 비 내리는 오후, 귀찮음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무거운 몸뚱어리를 이곳으로 옮겨 올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읽을 수 있다는 위로, 책이 주는 평온함과 고요함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의 먼지를 닦고 나서 에어컨을 틀고 책상 앞에 앉으니 그동안 쓰고 싶지 않았던 글을 갑자기 써야겠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집은 무기력한 나를 안아주기만 할 뿐, 무엇을 하라고 종용하는 법이 없습니다. 탈고 후 허전했던 마음은 일로 어찌어찌 채울 수 있었지만, 상반기 강사 만족도 결과는 예상치 못한 것이라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네요. 집에서 사부작 거리며 나름 무언가를 열심히 하던 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넋이 나간채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저를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놓는 데 제법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네요.
저는 교육청에서 5년째 학부모 대상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강의 주제는 '학습'과 '진로', '진학'이다 보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폭넓게 강의하고 있지만, 제가 가장 의미를 두고 잘하고 싶은 강의는 다름 아닌 학부모 강의입니다. 학생 자신의 힘만으로는 거친 감정을 다루는 것도, 진로를 선택하는 일도, 습관을 바꾸고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 가장 가까이에서 부모가 돕기를 바라는 마음이 추동이 되어 시작하게 된 강의였으니까요.
작년까지는 초등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의했지만, 올해는 중학생 학부모로 범위를 넓혔고 이것이 제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중학생 학부모만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과 중학생 학부모를 한꺼번에 강의하기는 역시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만족도 점수로 제게 돌아왔지요.
'어떻게 모든 사람이 다 만족하는 강의를 할 수 있겠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이해시키려 했지만, 초등학생과 중학생 학부모의 기대치와 눈높이가 크게 다르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닌데 제 오만함이 도전을 부추긴 것은 아니었나 싶어 혼란스러웠습니다. 만족도 점수에 연연하지 말라는 교육청 주무관의 말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감성보다 이성이 넘치는 제 머리는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당장 분석해 보라고 닦달했습니다. 그 결과 초등 저학년 학부모의 만족도가 전체 만족도 결과치를 하향으로 끌어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부모가 자신의 철학을 세우고, 자녀에게 맞춤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꾸준히 자녀를 관찰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고, 계속해서 공부하라는 내용의 강의가 그들에게는 가닿지 않았나 봅니다.
서이초 선생님의 자살도 교육부 5급 사무관 출신이라는 학부모의 편지도 모두 저를 분노케합니다. 자녀 맞춤의 그 무엇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자녀를 제대로 잘 알고 있습니까? 선생님에게 요구하고 있는 일들을 본인의 자녀에게 실천하고 있습니까? 집 밖을 나선 자녀의 모습에 놀라지 않고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습니까? 부모가 바뀌어야 자녀도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바르게 잘 자랄 수 있습니다.
만족도 점수에 연연하는 저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지만, 하반기에는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대상을 중학생 학부모로 수정해야 할지, 다시 좌절을 겪더라도 상반기의 도전을 이어가야 할지... 여전히 갈팡질팡합니다. 오늘도 방황하는 제 마음을 벽면 가득 채운 책들이 위로해 주네요. 기억에 남는 책들은 잘 메모했다가 조금씩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