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라코알라 Aug 05. 2022

특성화고는 전기고

진로가 명확하다면 특성화고 진학도 고려해 보세요


94학번.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대학을 갔던 첫 학번에 해당됩니다. 시험 문제의 형태가 교과 내용만 달달 외워서 보는 시험이 아니라고 해서 학력고사 세대는 절대 재수를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던 벌벌 수능, 첫 수능은 두 번이나 치러졌습니다. 두 시험에 대한 난이도 조절은 대실패여서 첫 번째 시험은 물, 두 번째 시험은 죽. 두 개의 시험 점수 중 잘 나온 것으로 대학을 지원하게 했던 건 아마도 미국의 대학 입학 자격시험, SAT를 흉내 낸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대학들도 바뀐 시험제도에 믿음이 없었던 탓인지 본고사라고 해서 대학별 고사를 따로 치르는 대학도 있었지요. 전년도와 비교해 변하지 않은 게  딱 하나 있었으니... 전후기대 분할 지원이었습니다.


학력고사 시절부터 소위 좋은 대학은 전기대에, 나머지 대학은 후기대에 포진되어 있었죠. 재수는 죽기보다 싫어서 눈치작전을 얼마나 펼쳤는지... 원서 마감 직전에 경쟁률 낮은 과에 무조건 넣고 보는 전략을 몸소 시현했지요. 전후기 분할모집은 그 후에도 한동안 유지되었고, 입시일도 서로 다르게 하여 최대 5번까지 응시할 수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인지대(지원 접수비)로 대학들은 엄청난 돈을 벌었고, 그것으로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지었습니다. 외벽만 멋들어지고, 실상은 오래된 캐비닛이 뒹구는 그런 대학에 제 등록금도 유용하게 쓰였겠죠??


오래된 옛이야기를 꺼내든 이유는 고입, 그중에서도 전기고 입학과 관련한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에서도 먼저 입시가 치러지는 전기고 입시가 있단 말이죠. 많이들 오해하십니다. 전기고가 전기대처럼 좋은 학교인 것이냐고 말이죠. 전기고, 후기고라 이름 붙여진 건 오로지 전형 시기 때문입니다. 외고, 국제고, 자사고, 일반고가 후기고에 해당된다면 과학고, 예/체고, 마이스터, 특성화고는 전기고에 해당됩니다.


그렇다면 특성화고는 누가 지원할까요?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하면 대답하기를 주저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개는 자신의 선택지 안에 특성화고가 없어서라고 합니다. 중학교에 막 입학한 1학년 학생들에게 물으면 저는 "과고 아니면 자사고 갈 거예요."라는 답이 가장 많고, 중3 학생들에게 물으면 "근처 일반고 중에서 생각하고 있어요."라는 답이 가장 많죠. 자신의 성적을 끌어올릴 생각보다는 비교적 내신을 잘 받을 수 있는 고등학교에 대한 소문을 수집하고 다닙니다.


전기고에 해당되는 과학고, 예술고, 체육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모두 진로가 비교적 뚜렷한 친구들이 선택하는 고등학교라 할 수 있겠네요. 외고, 국제고도 2018년까지는 전기고에 해당되었는데 이후 후기고 선발로 바뀌었죠. 최근 박 모시기 신임 교육부 장관이 외고 폐지, 국제고 존치 검토라는 당혹스러운 발표를 해서 재학생과 학부모들은 비분강개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전기고는 이렇듯 자신의 진로가 비교적 명확한 친구들이 고려해 볼 수 있는 고등학교 선택지에 해당됩니다. 전기고 지원과 입시 결과가 모두 나오면 그때부터는 후기고의 입시가 시작됩니다. 전기고에 합격했다면 후기고 지원은 불가하니 참고하세요.


저희 둘째 녀석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군인, 경찰 같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과하게 요구하는 직업들을 선호해 왔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교정직 공무원(교도관)까지 추가되었고요. 진로 시간에 해당 직업에 도달하는 경로를 찾아보기도 하고, 관련 대학들과 진로에 유리한 학과도 찾아본 모양입니다. 하지만 공부는 하기 싫고, 목표(육사, 경찰대)는 너무 높고... 어차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거라면 자신은 국, 영, 수와 역사, 그리고 강인한 체력이면 된다면서... 요즘 공부보다는 열심히 몸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엄마의 시선에서는 위계가 철저한 군인, 경찰직에 아이의 성향이 맞을까 의심스럽고, 그 나이에 어울리는 제복 판타지도 한몫하는 것 같아서 아이의 말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영어, 수학에 비해 국어 성적이 좀 쳐지는 것을 올려보고자 아이에게 특성화고(단기목표)를 제안해 봤습니다.


대부분의 특성화고는 특별전형과 일반전형으로 나뉩니다. 두 전형 모두 중학교의 내신성적이 기본 베이스입니다. 하지만 특별전형의 경우, 자신의 진로가 뚜렷하고 구체적임을 드러내는 포트폴리오나 진로(학업)계획서 외에도 희망하는 고등학교에서 진행하는 특별 교육과정에 참가했는지 여부로 지원 자격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되기 전 특성화고 진학을 결정했다면 특별 교육과정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참가 신청을 하면 좋겠습니다. 대개 중3 여름방학 기간 중에 교육 과정들이 열리기 때문이죠.


일례로 J구에 위치한 D고등학교는 '회계특별교육과정'을 3일간 진행하고, 수료한 친구들에게 특별전형의 기회를 줍니다(모든 특성화고가 다 이런 교육과정이 있는 건 아니니 참고하세요). 특별전형의 경우 면접에서 판가름이 나는 경우가 많으니 특성화고를 준비하는 자녀가 있다면 미리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작은 아이에게는 G상고의 경찰행정과와 부사관행정과를 추천했습니다. 아이는 당장 학교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제복을 입고 경례를 하고 있는 언니, 오빠들을 찾아봅니다. 눈을 반짝거리며 "나도 가고 싶다"하는 속삭임이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네요. "딸아, 다른 건 말하지 않으마. 2학기 국어 성적을 올려보자꾸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